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미래를 위한 보존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가유산청은 국난 극복의 염원을 담은 「고려 오백나한도」를 비롯하여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유항선생시집」, 「휴대용 앙부일구」까지 총 네 건의 유물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며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이는 단순한 유물 보존을 넘어, 과거의 역사적 맥락과 예술적 가치를 현재적 의미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보물 지정 예고된 「고려 오백나한도(高麗 五百羅漢圖)」는 13세기 몽고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난 극복을 기원하며 제작된 대규모 불화 중 한 폭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500폭이라는 방대한 규모로 제작된 고려 오백나한도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품과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다. 지정 예고 대상인 제329원상주존자를 묘사한 이 작품은, 한 폭에 하나의 존자를 담는 독특한 형식과 함께 화면 상단 좌우의 화제(畫題)와 하단 중앙의 화기(畫記)를 통해 제작 배경, 1235년이라는 제작 연대, 발원자 김희인, 시주자 이혁첨 등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 있어 고려 시대 불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용을 올려다보는 존자의 강인함과 역동적인 자세, 능숙하게 구사된 필선과 자유로운 농담 표현은 고려 불화 특유의 높은 예술성과 신비로운 종교적 감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남아있는 고려 불화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제작 시기와 내력을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은 미술사적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또한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 시기와 조각승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양식적 특징을 통해 16세기 중엽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소성 있는 불상이다. 나무 뼈대에 흙으로 상을 만드는 일반적인 소조불 제작 방식과는 달리, 나무로 윤곽까지 세부적으로 만든 후 소량의 흙으로 마감하는 독특한 기법이 적용되었다. 높은 육계, 장대한 상체, 풍부한 양감 등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과학적 조사를 통해 제작 기법이 명확히 밝혀져 불교조각사, 특히 조선 전기 소조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유항선생시집』은 고려 말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한수(韓修, 1333~1384)의 시집으로, 그의 생애와 사상, 학문, 인품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400년(정종 2년) 금산에서 목판으로 처음 간행된 초간본이 지정 예고 대상이며, 이후 간행된 여러 판본의 저본(底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형태 서지학적으로 매우 귀중하다. 특히 14세기 이전 문집과는 다른 계선, 흑구, 어미 등의 등장 여부와 판식, 서체, 간행 방식에서 개인 문집 간행의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며 후대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현재 국내외에 단 3책만이 전하는 희귀성을 고려할 때, 보물 지정은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휴대용 앙부일구(携帶用 仰釜日晷)」는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영침과 나침반을 결합하여 시간을 측정하도록 제작된 휴대용 해시계이다. 반구면의 정밀한 절삭과 백동 영침의 은도금 등 우수한 제작 기법이 돋보이며, 융희 2년(1908년)이라는 제작 연대와 제작자 강문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과학사적 가치 또한 높다. 1434년(세종 16년) 장영실 등이 처음 만든 앙부일구는 조선 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는데, 이 작품은 궁궐이나 관공서에 설치되는 고정형이 아닌 휴대용이라는 점에서 실용성과 발전된 기술을 보여준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각 유물이 지닌 역사적, 예술적, 과학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확장하려는 국가유산청의 노력을 반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다 합리적인 지정 제도를 정착시켜 문화유산의 지속 가능한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정부혁신과 적극 행정의 실천 사례로 평가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