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ESG 경영 기조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이행과 문화유산의 가치 보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역사적 맥락을 배우고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를 조명하는 ‘순종황제 능행길’ 체험은 근대 전환기의 격동적인 시대를 이해하고, 문화유산을 활용한 ESG 경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2025년 하반기에도 ‘왕릉팔경(王陵八景)’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왕릉과 궁궐을 잇는 다채로운 여정을 제공한다. 이 가운데 ‘순종황제 능행길’은 기존 조선 왕릉 중심의 탐방에서 벗어나 대한제국 황실 유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기자는 2025년 9월 초,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리 동구릉에서 시작해 남양주 홍릉과 유릉까지 이어지는 여정에 참여했다. 늦여름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왕릉과 왕릉을 잇는 길 위에서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는 경험은 참가자들에게 근대 전환기의 역사와 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을 선사했다. 회당 25명으로 제한된 참가 인원은 높은 관심 속에서도 이러한 특별한 경험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구리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해 총 9기의 왕릉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으로,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왕과 왕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는 능역의 구조와 제향의 의미, 그리고 능묘에 담긴 정치적 배경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7세기 조선의 권위적인 학자였던 송시열의 상소로 왕릉마다 표석이 설치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송시열은 후손들이 왕릉을 구분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표석 설치를 주장했으며, 전서체 사용을 제안함으로써 왕릉 제도와 예법에 대한 엄격한 관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태조 이성계의 유언에 따라 봉분을 억새로 덮은 건원릉은 6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독특한 전통을 보여주며, 왕릉 조성 방식의 변화와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인 ‘순종황제 능행길’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삶을 따라간다. 1908년 순종은 ‘향사리정에 관한 건’ 칙령을 통해 제사 횟수를 연 2회로 축소하며 제도를 정비했으나, 이는 제사 문화의 전통적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한제국 시기의 복잡한 예제 정비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있어 제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문화유산의 지속가능성과 보존 가치를 재확인시켜 준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은 조선 왕릉의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른다.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이후, 능의 조영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 홍릉 비각 표석을 둘러싼 ‘前大韓’ 표현 논쟁은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며, 이는 문화유산의 기록이 담고 있는 시대적 굴곡을 드러낸다.

또한, 헌종과 두 왕비가 나란히 모셔진 경릉의 삼연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한 합장 형식으로, 당시의 서열 의식이 왕릉 공간에도 반영된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비석이 여러 차례 다시 새겨진 흔적은 석비 제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려 했던 당시의 사정을 보여주며,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함께했던 현실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순종황제 능행길’ 체험은 참가자들에게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주권을 잃은 황제의 고뇌와 격변의 시대를 마주하게 했다. 초등학생 참가자가 “역사학자가 되어 문화유산을 지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미래 세대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뒤에 담긴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의미를 되새기는 길이며, 이는 기업의 ESG 경영 실천이 단순한 사회적 책임을 넘어 문화유산의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 세대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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