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은 창경궁의 600년 역사를 집약한 상설 전시 ‘동궐, 창경궁의 시간’을 개관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유적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생활상을 재해석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문화유산 활용의 모범 사례를 제시한다.

‘동궐, 창경궁의 시간’ 전시는 1418년 세종이 태종을 위해 건립한 수강궁에서 시작하여, 1483년 성종 대에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리며 조선 왕실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던 창경궁의 600년 역사를 다룬다. 또한, 일제강점기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굴곡진 시련과 광복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경궁이 걸어온 시간의 궤적을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정궁이 아닌 별도의 이궁(離宮)으로서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렸던 창경궁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왕의 집무 공간, 왕실 여성과 세자의 생활 터전, 국가 의례가 펼쳐졌던 현장 등 600년 역사의 다양한 단면을 생생한 자료와 함께 선보인다. 일제강점기 ‘창경원’ 시절의 훼손과 광복 이후 복원 노력에 관한 자료는 궁궐이 겪어온 아픔과 회복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더 나아가, 청각·시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해설 영상과 점자 안내 책자를 제공함으로써 문화유산 접근성을 높이는 포용적인 전시 방안을 마련했다.

더불어, 창경궁 집복헌 옆에 위치한 영춘헌 전각은 11월 16일까지 특별 개방되어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태블릿 컴퓨터를 이용한 증강현실(AR) 기술로 1848년(헌종 14년) ‘무신진찬의궤’ 속 왕실 연회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마치 그 시대에 와 있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무신진찬의궤’는 헌종이 순원왕후의 60세와 신정왕후의 41세를 기념하기 위해 열었던 연회의 기록으로, 당시 왕실 문화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동궐도>에 그려진 창경궁 전각들을 찾아 스티커를 붙여 완성하는 체험, 포토존 및 휴식 공간 마련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이번 ‘동궐, 창경궁의 시간’ 전시는 사전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 및 참여가 가능하며(창경궁 입장료 별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이는 문화유산을 딱딱하고 어려운 유적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살아 숨 쉬는 역사와 문화의 장으로서 활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사례는 동종 업계의 다른 기관들에게도 문화유산을 활용한 창의적인 콘텐츠 개발 및 대중과의 소통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궁궐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을 밝히며, 문화유산 활용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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