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요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이 산업 전반에 걸쳐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유럽연합(EU)이 철강 수입 쿼터(TRQ, 관세할당)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제안을 발표하면서, 국내 철강 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의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번 EU의 제안은 단순히 특정 품목의 무역 규제 강화 차원을 넘어, 세계 철강 시장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EU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기존의 세이프가드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철강 TRQ 도입 제안을 공개했다. 이번 제안의 핵심은 쿼터 물량을 기존 대비 47% 축소하고, 쿼터 밖 세율을 20%에서 50%로 대폭 인상하는 동시에, 조강(melt & pour)국에 대한 모니터링 도입 등 전반적인 철강 수입 규제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EU 시장으로의 철강 수출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EU가 철강 수출에서 차지하는 두 번째로 큰 시장이라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현행 세이프가드 제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수출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수개월간의 EU 일반입법 이행 절차를 거쳐 내년에 확정될 경우, 국내 철강 업계의 EU 수출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EU의 제안 발표 이후, 산업통상부는 10일 박종원 통상차관보 주재로 철강업계와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며 대응 체계 강화에 나섰다. 회의에 참석한 철강업계는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며, 정부의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특히, 각국이 수출 장벽을 높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 엄격한 국가로 수출이 쏠리는 ‘밀어내기 수출’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지적하며, 불공정 수입 철강재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통상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철강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저탄소·고부가가치 전환에 대한 범부처 차원의 지원 확대도 강력하게 요청했다.
정부는 이러한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EU가 쿼터 물량 배분 시 FTA 체결국을 고려하겠다는 명시적 입장을 밝힌 만큼, 다양한 협의 채널을 통해 국내 업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우리 국익을 최대한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와 한-EU FTA상의 적절한 채널 활용도 지속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수출 기업의 애로 해소를 위해 철강 수출공급망강화 보증상품 신설과 철강·알루미늄·구리·파생상품 기업 대상 이차보전사업 추진 등 구체적인 지원 방안도 발굴하고 있다.
나아가, 이달 중 관계 부처 합동으로 ▲글로벌 공급과잉 대응 품목별 지원책 마련 ▲반덤핑 등 제도를 통한 불공정 수입 대응 강화 ▲저탄소 철강재 기준 수립 및 인센티브 마련, 수소환원제철·특수탄소강 등 저탄소·고부가가치 전환 투자 확대 지원 ▲안전관리 강화 및 상·하공정 간 상생협력 확대 등을 포함하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마련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앞으로도 철강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주요국의 통상 장벽 강화에 총력 대응하고, 우리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보호무역주의라는 파고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가고 한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