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안보 역량 강화 및 자주국방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개별 국가의 방위력 증강을 넘어, EU 차원의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EU의 1500억 유로(약 245조원) 규모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 참여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EU에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인 ‘세이프(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참여 의향서를 제출하며 EU 시장 진출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세이프 프로그램은 EU 회원국의 재무장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공동구매 추진 회원국에 낮은 금리의 대출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맺은 국가의 경우, 공동구매 무기의 제3국산 부품 비율 제한 기준(35%)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방산 기업들이 EU 내에서 생산 시설을 확보하고 EU의 안보·방위 목표에 동참한다는 조건 하에, 유럽 전역으로 자사 제품의 공급망을 확장할 수 있는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이러한 EU의 움직임 속에서 한국 방산업체들의 EU 시장 내 입지 강화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후타스탈로바볼라(HSW)와 K9 자주포 구성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스웨덴에 155㎜ 모듈형 추진장약(Modular Charge System, MCS)을 추가 공급하며 북유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폴란드군사기술연구소(WITU)와 155밀리미터(mm) 모듈화장약(MCS) 분야에서 품질 인증 협약을 맺으며 유럽 내 생산 거점 확대를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현대로템 역시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및 관련 파생형 2차 이행계약을 체결하며 폴란드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보급·정비 기반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량 확대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유진투자증권의 양승윤 연구원은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무기 재고가 부족한 상황이며, 특히 포병과 전차 체계가 가장 시급한데 이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 방산업체가 EU의 재무장 수요에 부응하며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 방산 기업들의 EU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 참여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수출 증대를 넘어, 한국이 글로벌 방위산업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