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 경영이 전 산업 분야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단순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넘어선 거대한 산업적, 사회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오랜 상상력과 예술성,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이 바위 위에 새겨진 ‘역사의 벽화’가 어떻게 현재의 산업 트렌드와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지난 2024년 7월,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되면서 이는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자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를 통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선사인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 만에 세계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게 된 이 결정은, 과거의 유물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의 언어’로서 재조명받아야 함을 시사한다.
반구천 암각화는 1970년 12월 24일,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울산 언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암각화인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1년 뒤인 1971년 12월 25일에는 인근 대곡리에서 고래, 사슴,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과 사냥 장면이 생생하게 표현된 또 다른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이 두 유적이 묶여 ‘반구천 암각화’로 통칭되며, 이번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식 명칭 역시 ‘반구천 암각화’다.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로, 순서가 뒤바뀌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점은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인다.
이 암각화들은 6000여 년 전 동해 연안 거주민들이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하고, 그 경험을 반석 같은 바위에 새긴 기록이다. 이는 단순한 동물의 묘사를 넘어 집단 의례의 도상이며, 인류 예술의 기원, 나아가 오늘날의 다큐멘터리 스토리보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고래 옆에 새겨진 호랑이와 사슴, 그리고 해석되지 않은 기하문들은 미지의 코드를 품고 있으며, 천전리 암각화의 다섯 개 다이아몬드 형상은 추상미술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비견될 만한 인류 선사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반구천 암각화는 지난 반세기 동안 수몰 위협과 싸워왔다. 댐 건설로 인한 수위 상승으로 암각화 일부가 물에 잠기고 박락이 발생했으며, 어설픈 탁본으로 원본이 상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최근의 잦은 가뭄으로 암각화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점증하는 기후변화와 댐 운영의 변수는 ‘반구천’을 언제든 ‘반수천(半水川)’으로 되돌릴 수 있는 위협 요인이다. 물속에 잠기는 유산은 세계유산으로서의 지위를 잃을 수 있으며, 등재 이후의 보호·관리 계획이 부실할 경우 유네스코는 등재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우리에게 큰 과제를 안겨준다.
진정한 과제는 이제부터다.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를 표방하며 고래 축제 개최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암각화를 단순 보존하는 것을 넘어 체험형 테마공원,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 등을 아우르는 생동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번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형 전략도 병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관광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생태 환경이 훼손되거나 과잉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유산의 본질을 배반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라스코 동굴은 관람객 증가로 인한 환경 훼손 문제로 1963년 진본 동굴을 폐쇄하고 재현 동굴을 설치했으며, 알타미라 동굴 역시 2002년 전면 폐쇄 후 정밀한 복제 동굴을 통해 교육 및 관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사례는 문화유산의 공개와 보존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며, 결국 복제품을 통한 ‘간접 관람’ 방식으로 전환해야 했음을 증명한다.
원본이 주는 ‘아우라’는 최상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후대에 유산을 잘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현대 기술은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AI 제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반구천 암각화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의 꿈은 유네스코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으며, 이제 이 거대한 바위의 장엄한 서사는 인류와 함께 나누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산업적, 문화적 모델을 구축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