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인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은 최근 10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는 출생아 및 혼인 증가세, 특히 30~34세 여성 출산율의 34년 만에 최대 폭 증가를 ‘결혼과 출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신호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 현상을 넘어 부모가 진정으로 “아이를 낳길 잘했다”고 확신하기 위해서는, 양육 친화적인 생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작은 불편이 누적되면 통계적 상승세는 언제든 꺾일 수 있으며, 지금이야말로 촘촘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할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이를 낳으면 축하받고, 어디서든 편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도시와 나라’라는 기본적인 요건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11월 27일 기준, 서울시 개방·공중화장실 3,708곳 중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곳은 1,123곳, 즉 30%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중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이 575곳, 남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은 23곳에 그쳐 성평등 돌봄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와 함께 외출한 아버지가 기저귀 교환대를 찾지 못해 겪는 어려움, 혹은 딸아이와 함께 스포츠 시설을 이용하려던 아버지가 남성 탈의실의 민원으로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혀야 했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보육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성평등한 돌봄을 위한 ‘생활 인권’의 영역임을 시사한다.
정책적 노력은 분명 인지되고 있으나, 인프라 구축은 더디기만 하다. 올해 국가공무원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아빠 교육·캠프 프로그램 만족도 역시 5점 만점에 4.8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 의지가 상당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2025년, 가족센터 등 공공·위탁 기관들은 예산 삭감과 부족으로 가족 프로그램 기획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교환대·유아 세면대 설치 예산은 ‘부대비’로 분류되어 삭감 1순위가 되기 십상이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 신도시와 동네 상가 간 인프라 격차가 심화되면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개념에도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은 분명 행동으로 증명되고 있다. 아버지 역할, 소통, 놀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유아차 런’과 ‘탄생응원 서울축제’ 등은 건강한 양육 문화와 탄생의 기쁨을 나누며 새로운 양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서울시 100인의 아빠단이 참여한 서울대공원 캠핑장 1박 2일 공동 양육 체험 후기에서는 “양육 스트레스가 줄고 관계가 깊어졌다”는 의견이 쇄도하며 더 많은 양육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부모들의 열정을 ‘일상의 편의’로 연결하는 것은 정책 당국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할 몫이다.
출산율 반등세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네 가지 기본 장치를 채워야 한다. 첫째, 성평등 인프라의 표준화다. 국공립 시설, 대중교통 환승 거점, 대형 민간 시설에 가족 화장실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남녀 화장실 모두 유아 거치대, 교환대, 유아 세면대, 벽면 발판을 동일한 비율로 갖추도록 ‘생활 SOC 가이드라인’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아버지 교육 프로그램 예산 증액 및 주말 자녀 동반 프로그램의 확대다. 공공 및 위탁 시설의 아버지 교육 예산을 늘리고, 자녀 돌봄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시설 및 인프라 개선을 통해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문화와 정책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교육·체험 프로그램에서 얻은 만족도를 인프라 개선 요구로 연결하는 ‘정책 → 행동 → 문화 → 정책 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돌봄 시민권’ 캠페인을 확산시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확산시키고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일상적인 양육이 불편한 나라는 출산율 반등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출산율 반등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이지만, 기본 인프라가 미비하면 “출산은 기쁜 일”이라는 메시지는 공허해진다. 아이를 낳으면 축하받고, 어디서든 편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도시와 나라. 이러한 기본적인 생활 장치가 갖춰지는 순간, 출산율 그래프보다 훨씬 큰 ‘행복지표’가 우리 삶을 채울 것이다. 거창한 구호가 아닌, 화장실의 작은 교환대, 스포츠 시설의 가족 탈의실처럼 눈높이를 맞춘 ‘생활 장치’야말로 지속가능한 반등을 이끌 열쇠이며,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