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철강 수입쿼터(TRQ)를 대폭 강화하는 제안을 발표하며 국내 철강 산업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겼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개별 국가의 정책 변화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거시적 흐름 속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EU의 이번 제안은 기존 세이프가드 제도를 대체하며, 쿼터 물량을 47% 축소하고 쿼터 밖 세율을 20%에서 50%로 인상하는 등 실질적인 수입 규제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조강(melt & pour) 생산 방식에 대한 모니터링 도입까지 예고하며, EU 시장으로 향하는 한국 철강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세이프가드에 따른 쿼터와 관세율이 당분간 유지되어 즉각적인 수출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EU의 일반입법 이행 절차를 거쳐 내년 확정될 경우 우리나라의 철강 수출 2위 시장인 EU에서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지난 9월에 진행된 ‘철강 파생상품 관세 애로 상담회’에서도 이러한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공유된 바 있다. 회의에 참석한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보호무역 기조의 확산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정부 차원의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특히, 각국의 수출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통상 방어가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국가로 ‘밀어내기 수출’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지적하며, 불공정 수입 철강재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집중적인 통상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는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0일 박종원 통상차관보 주재로 철강업계와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EU 동향 공유와 향후 대응 계획을 논의했다. 정부는 EU가 쿼터 물량 배분 시 FTA 체결국을 고려하겠다는 명시적 입장을 밝힌 만큼, 다양한 협의 채널을 통해 국내 업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우리 이익을 최대한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및 한-EU FTA상 적절한 채널의 활용도 지속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더불어, 철강 수출기업의 애로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철강 수출공급망강화 보증상품 신설 및 철강·알루미늄·구리·파생상품 기업 대상 이차보전사업 추진 등을 통해 기업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고자 한다.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탄소·고부가가치 전환에 대한 범부처 차원의 지원 확대 역시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달 중 관계 부처 합동으로 ▲글로벌 공급과잉 대응 품목별 지원책 마련 ▲반덤핑 등 제도를 통한 불공정 수입 대응 강화 ▲저탄소 철강재 기준 수립 및 인센티브 마련 ▲수소환원제철, 특수탄소강 등 저탄소·고부가 전환 투자 확대 지원 ▲안전관리 강화와 상·하공정 간 상생협력 확대 등을 포함하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산업부는 앞으로도 철강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주요국의 통상장벽 강화에 총력 대응하고, 한국 철강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