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복합 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남북 관계에서는 평화의 정착을 실현하며, 외교적으로는 유연한 실용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과거의 분단 체제가 남과 북을 가르고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하며, 포용과 통합, 연대와 상생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맥을 같이한다.

특히, 광복절을 맞아 강조된 ‘평화’는 단순한 불안의 부재를 넘어 안전한 일상의 근간이자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이며, 경제 성장의 필수 조건으로 그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역사적으로도 독재 정권은 전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민주주의는 평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평화는 경제 발전의 든든한 땅이 되어야 경제라는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신뢰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전단 살포 중단이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같은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접경 지역에 일상의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 물론, 지난 정부의 적대 정책으로 인해 깊어진 불신을 해소하고 한반도 주변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과 같은 외부 요인도 남북 대화의 문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 관계’로 규정하는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주장 이후 일부에서 통일이라는 단어 삭제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는 분단 극복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간과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특수 관계’라는 개념은 두 개의 국가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통일을 향한 역사적 여정을 잊지 않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각자의 강조점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열린 개념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이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다수의 합의를 유지하며 가능했던 것처럼,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분열을 경계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 역시 ‘핵 없는 한반도’를 지향하면서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고도화된 북한의 핵 능력과 달라진 국제 환경으로 인해 매우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남북 관계 개선과 더불어 북한과 미국의 대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북한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를 거부하고 북러 관계에 의존하는 상황이지만, 고정된 국제 질서는 변화하며, 이러한 전환 국면에서 새로운 해법 모색이 시급하다. 지난 30년간의 북핵 협상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일 관계에 대한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협력’ 강조는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흐름 속에서 공급망의 혼란과 무역 질서의 변동은 한일 양국의 상생 협력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는 신뢰 구축을 통해 안보 분야 협력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과제이며, 9·19 군사 합의 복원을 포함한 긴장 완화는 북한에게도 필요한 부분이다. 충돌이 없는 소극적 평화는 현재도 가능하지만,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북한 또한 북방 전략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지금은 복합 위기의 시대이며,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회복력’, ‘평화의 정착’, 그리고 ‘유연한 실용 외교’라는 세 가지 축이 조화롭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는 성균관대에서 북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 통일연구원 원장 및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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