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직면한 심각한 초저출산 현상은 단순히 인구 통계학적 수치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미래 경쟁력과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거시적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소멸 위기에 처했으며, 경북 의성군과 같이 고령 인구가 절반에 육박하고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한 지역들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출생아 수 증감을 넘어 ‘아이가 태어나기 좋고 부모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양육 행복 사회’로의 전환은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 주목할 만한 실천 사례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인 서울과 인천의 양육 정책 비교는 정책의 양보다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과 접근성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서울시가 출산지원금, 아이돌봄 서비스, 공공보육시설 확충 등 다방면에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주거 비용과 육아 시설 접근성의 불균형으로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반면, 인천시는 산후조리원 비용 지원, 첫째부터 육아수당 지급, ‘아이 플러스 시리즈’, ‘천사지원금’ 등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을 통해 높은 만족도를 이끌어냈다. 이는 정책의 총액 규모가 아닌, 시민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 밀착형 정책’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인천시의 사례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브랜드 구축을 통해 육아 지원 정책을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공공어린이집 확대, 부모 교육 및 심리 지원 강화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며, 시민들이 겪는 양육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2024년 출산 의향이 전년 대비 12% 상승하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였으나, 정책이 분산적으로 운영되고 육아의 고립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과제로 남았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 해소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과밀 지역에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출산 문제 극복에 있어 실효성을 거둔 육아 정책들의 공통점은 ‘생활 밀착형 정책’과 ‘민간-공공 협력 체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산시의 ‘100원 택시-산모 전용’, 인천시의 ‘가족친화 인증제’, 광주시의 ‘출산축하용품 패키지 제공’ 등은 소규모 예산으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중소도시들이 참고할 만한 효과적인 정책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아빠 육아휴직 장려, 탄력근무제 의무화, 출산 직후 부모 상담 서비스 등은 단기적인 출산율 개선을 넘어 양육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정책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가 필수적이다. 첫째, 제도적 연속성 확보를 위해 정부 및 지자체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출산-육아 정책 통합 체계를 국가 기본법에 근거하여 구축해야 한다. 둘째, 기업과의 파트너십 강화는 필수적이다. 육아휴직 및 유연근무제가 눈치 보지 않고 사용될 수 있도록 가족친화기업 인증 확대, 조직 문화 변화, 그리고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 활용 인센티브제 도입이 시급하다. 셋째, ‘아이 키우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기쁨’으로 바꾸는 시민 인식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출산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때 건강한 문화적 전환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시는 단순히 출산율이 높은 도시가 아니라, 아이 키우는 것이 자랑스러운 도시, 부모가 존중받는 도시, 그리고 함께 돌보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이다. 공공보육, 안전한 양육 환경, 촘촘한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갖춘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일과 육아의 균형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와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는 ‘부모가 행복한 도시’, 출산부터 양육 전 과정에 행정과 미래가 함께하는 ‘아이 낳고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저출생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길이다. 이러한 전환은 저출생이라는 위기를 공동체 재설계의 기회로 삼아, 정부, 지자체, 기업, 시민이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여 아이들이 웃으며 자랄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김기탁 소장은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세 아이와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해왔다. 그는 아빠 육아와 남성 육아휴직 인식 문화 확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