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는 민주주의 회복을 발판 삼아 경제 심리와 주식 시장, 성장률 등에서 긍정적인 회복세를 보이며 위기의 늪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침체된 소비 심리를 살리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한 지 2개월 만에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시장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는 최근의 경제 지표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2.2%라는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미국 구조 계획법(the American Rescue Plan Act)’을 통해 2021년 미국 GDP의 8%에 달하는 1.9조 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응’은 2021년 2분기부터 소비지출을 완전히 회복시켰고, 이는 임기 중 연평균 3.6%라는 높은 성장률 달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했지만, 결과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정부 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팬데믹 초기 GDP 대비 99.5%였던 미국 정부채무는 2023년 1분기 109.5%로 하락했으며, 가계 구제 지원 덕분에 가계 부채 비율도 오히려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소비 부양, 경제 성장, 정부 및 가계 채무 안정이라는 네 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 2020년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GDP의 0.7%에 불과한 14.2조 원을 투입한 결과, 같은 해 가계 소비 지출은 GDP의 3.9%에 해당하는 79조 3394억 원이나 감소했다. 이후에도 소비 지출 감소폭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되면서, 지난 3년간 가계,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출 연체액이 각각 약 2배, 4배, 5배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계의 실질 가처분 소득은 2020년 수준으로, 실질 소비 지출은 2016년 수준으로 후퇴했으며, 정부채무 역시 2019년 말 GDP 대비 35.4%에서 2023년 말 46.9%로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 전염병’ 확산과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 상실을 야기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충격보다 더 심각한 ‘자발적’ 경제 생태계 붕괴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출범한 현 정부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위기 관리와 새로운 기회로의 전환 역량이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수위 기간에 해당하는 지난 두 달간 보여준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은 시장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소비 심리 지수가 빠르게 회복되며 부정적 경제 심리가 긍정적으로 전환되었고, 지난해 2분기부터 지속되었던 GDP 성장률 부진에서 벗어나 올해 2분기에는 0.6% 성장률을 기록하며 늪에서 빠져나왔다. 가계 소비가 2분기 성장률의 상당 부분을 견인하며 내수의 성장 기여도가 크게 반등한 결과로,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식 시장의 빠른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제 심리 개선을 넘어 실물 경제의 방향을 확실히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가계에 대한 구제 및 지원을 통해 소득을 강화하는 것이 실물 경제 개선의 핵심이다. 현재 지급되는 ‘소비쿠폰’으로 불리는 민생지원금은 1분기 가계 지출 부족분의 1/3 수준에 불과하며, 연간 가계 소비 부족분을 고려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추가적인 소비 진작 프로그램 준비를 당부한 배경이기도 하다.
더불어 식음료와 에너지 등 생활 물가 안정은 서민과 중산층의 생계를 위해 필수적이다. 지난달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27.3%까지 오른 식료품 및 에너지 물가는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 소득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 정부가 생활 물가 안정을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러한 물가의 심각성을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경우 소득 계층별 물가 상승률을 조사하고 저소득층 및 중산층 물가 상승률이 전체 상승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소비쿠폰이 일시적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친다면, 재정 부담이 없는 정기적인 사회 소득 지급의 제도화가 민생 회복의 충분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