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이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우리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운영하는 ‘2025년 하반기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한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며, 특히 이번 하반기 프로그램은 대한제국 황실과 관련된 유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역사적 맥락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의 문화유산 향유 방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개별 왕릉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참가자들에게는 다층적인 역사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주목할 만한 실천 사례’로 평가받는다. 2025년 하반기에는 총 22회에 걸쳐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한 여행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예약은 8월 21일(9월 예약), 9월 25일(10월 예약), 10월 16일(11월 예약) 오전 11시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선착순으로 진행되며, 회당 참가 인원은 25명으로 제한된다. 이는 능침 답사를 포함하는 행사 특성상 참가 인원을 엄격하게 관리함으로써, 각 참가자에게 집중적인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특히 이번 하반기 ‘왕릉팔경’의 ‘순종황제 능행길’ 여정은 이전과는 차별화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기존의 조선 왕실 중심 탐방에서 나아가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으로 초점을 맞춘 것은, 격동의 근대 전환기 역사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기자는 2025년 9월 초, 이 특별한 여정에 참여하여 구리 동구릉에서 남양주 홍릉과 유릉까지 이어지는 길 위에서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는 깊이 있는 경험을 했다.
프로그램의 시작점인 구리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총 9기의 왕릉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이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1408년 태조의 건원릉부터 현종의 숭릉까지,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왕릉을 둘러보았다. 황석현 해설사는 능역의 구조, 제향의 의미, 그리고 능묘에 담긴 정치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며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표석이 송시열의 상소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명은 흥미로웠다. 우암 송시열은 예제에 대한 엄격함으로 왕릉 제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후손들이 왕릉을 구분할 수 있도록 표석 설치를 주장했다. 이는 예의 엄격함과 기억 보존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되었다. 표석에 전서체가 사용된 것 역시 송시열의 주장으로, 제왕은 일반인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반영된 결과다.
이번 여정의 핵심인 ‘순종황제 능행길’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황제의 삶과 시대를 조명한다. 순종 황제 때 제사 제도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1908년, 순종은 「향사리정에 관한 건」이라는 칙령을 반포하여 제사 횟수를 1년에 두 번으로 축소했다. 종묘 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의 능에는 명절제와 기신제를 모두 지냈지만, 그렇지 않은 능에서는 명절제만 지냈다. 명절제의 날짜는 한식날이 원칙이었으나, 대한제국 선포 이후 『대한예전』에는 한식 제사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 1899년 12월 31일 기사에는 고종이 중국의 청명에 맞춰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언급한 기록이 남아 있어 실제 제사 시기에 혼선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오늘날에는 기신제가 중심으로 남았으며, 해방 직후를 제외하고는 조선 시대부터 제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온 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구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건원릉의 봉분을 뒤덮은 억새는 태조 이성계의 특별한 유훈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태조는 생전에 고향의 억새를 무덤에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아들 태종이 이를 이행했다. 이 전통은 600여 년간 이어져 왔으며, 건원릉의 표석에는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이라 새겨져 태조의 위상을 황제로 격상하여 전한다. 이는 왕릉 제도와 예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이번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른 홍릉과 유릉을 통해, 왕조에서 황제국으로 체제를 전환한 대한제국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능의 조영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으며,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향어로의 장식 등은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홍릉의 비각 표석을 둘러싼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갈등,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는 프로그램에 깊이를 더한다.
참가자 김포 청수초등학교 3학년 이윤재 학생이 “역사학자가 되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처럼,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시간을 넘어 미래 세대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자리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뒤에 담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그리고 미래 세대와의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며, 문화유산을 활용한 사회적 가치 창출 및 역사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