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에서 9월 3일부터 28일까지 열리고 있는 <창극 중심 세계 음악극 축제>는 단순한 공연 행사를 넘어, 한국 고유의 음악극인 창극을 중심으로 동시대 음악극의 흐름과 현주소를 조망하며 국제적인 문화 교류의 장을 열고 있다. 올해 처음 개최되는 이 축제는 ‘동아시아 포커싱(Focusing on the East)’을 주제로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전통 음악 기반 음악극을 소개하며, 향후 세계적인 음악극 축제로 발돋움할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여러 배우가 배역을 나누어 연극적인 형태로 공연하는 한국 고유의 음악극으로, 1900년대 초 형성되어 현재까지 발전해 왔다. 1인극 또는 2인극 형식의 판소리와 달리 다인극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며, 판소리의 창, 아니리, 발림 등 주요 요소를 활용한다. 이러한 창극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음악극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이번 축제는 총 9개 작품, 23회 공연으로 구성되어 약 한 달간 관객들을 맞이한다.
축제의 개막작으로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심청>이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고전소설 ‘심청전’을 바탕으로 하되, 2017년 ‘올해의 연출가’로 선정된 요나 김 연출가가 극본과 연출을 맡아 기존의 효녀 심청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했다. <심청>은 자기희생적인 효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억압받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심청을 재해석하며 전통 판소리의 깊이는 유지하되 오늘의 시선으로 작품을 풀어냈다.
이번 축제는 해외 초청작과 국내 초청작, 국립극장 제작 공연 등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며 활발한 문화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특히 홍콩에서 온 월극 <죽림애전기>는 중국 월극의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작품으로, 죽림칠현 후손들의 삶을 그리며 도가 철학과 은둔의 미학을 선보였다. 2023년 홍콩 아츠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은 이 작품은 이번 축제를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이와 함께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호곤 씨는 <죽림애전기>를 관람하며 작품이 가정과 국가의 측면을 균형 있게 그려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문화정책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세계 음악극 축제>가 창극, 월극, 노극 등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문화 교류의 장을 이루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한국 문화 콘텐츠 제작자들이 세계화된 시각과 문화 수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호곤 씨는 특히 올해 1회 축제가 동아시아에 한정되었지만, 내년에는 전 세계로 확장되기를 기대하며 한국과 중국 문화 교류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초청작으로는 판소리와 민요를 통해 조선 말 여성의 삶을 그려낸 <정수정전>이 주목받았다. 작자 미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유교 사상이 팽배했던 조선 시대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남장을 하고 과거 시험을 보는 정수정의 모습을 통해 홀로서기 하는 여성의 애환을 담아냈다. <정수정전>은 여성 영웅의 이야기이자 한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지키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며, 배우들이 작창과 창작에 참여하는 공동 창작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세계 음악극 축제>는 단순히 동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다양한 해외 작품 초청과 국공립 및 민간 작품의 협업을 통해 전 세계의 다채로운 음악극 형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글로벌 축제로 확장될 예정이다. 또한,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부루마블’ 이벤트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며 축제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 창극의 발전과 더불어 국제적인 음악극 교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