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문화 콘텐츠의 가치는 종종 국경을 넘어 재평가되며, 이는 ‘문화 역수입(Cultural Reimportation)’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본국에서는 간과되거나 저평가되었던 문화가 해외에서 주목받으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다시 자국으로 돌아와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역수입 현상은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 특히 드라마 콘텐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한국 사회 전반의 문화적 인식과 정책 방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유행의 반복이 아니라, 문화의 순환과 회귀를 통해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나 일본의 우키요에 사례처럼, 외부의 시선에서 재발견된 문화는 본국에서 잊혔던 가치를 되살리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탱고는 본래 아르헨티나 부두 노동자들의 저속한 오락으로 치부되었으나,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에 의해 관능적 예술로 재해석되면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우키요에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자포니즘(Japonisme)’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미술사에 각인되었고, 이후 일본 내에서도 그 예술적 가치를 재평가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화 역수입의 흐름을 명확히 관찰할 수 있다. 판소리나 막걸리와 같은 전통문화는 물론, 최근에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적 정서와 가족주의, 이른바 ‘K-신파’적 감수성이 해외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 작품은 ‘감성 중심의 한국형 정서 서사’로서, 한국인이 가진 ‘감정의 DNA’를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과 중남미권에서 스토리와 플롯이 주는 공명의 소구력이 컸다는 분석은, 한국 문화의 보편적 감성적 힘을 입증한다.
이러한 해외에서의 뜨거운 반응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한류’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국가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가 타자(他者)의 평가를 통해 자국의 문화적 가치를 확인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해외에서 인정받고 인기리에 소비될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해당 문화 콘텐츠를 의미화하고 호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문화적 자기 확인 방식으로, 자국 문화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외부의 찬사를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화 심리학적 현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근현대사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문화 역수입 현상은 단순히 외국의 인기를 좇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순환하고 회귀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국면이다. 문화의 지속 가능성은 외연의 확장뿐만 아니라, 이러한 순환과 회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되돌아온 문화를 ‘해외 입양’ 보내지 않고, 그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자국 내에서 제대로 키워나갈 때, 문화는 비로소 살아 숨 쉬며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전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
MBC 교양 PD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했으며,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 K-콘텐츠와 한류 정책을 연구하며 ‘공감 한류’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