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동성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된다. 헨리 여권지수가 만들어진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권 상위 10위권에서 밀려나는 사건은 단순한 순위 변동을 넘어, 국제 관계와 국가 간 협력의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로 해석된다. 이는 개방성과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국제 사회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국가들이 앞서 나가는 반면, 과거의 특권에 안주하는 국가들은 뒤처질 수 있다는 거시적인 트렌드를 보여준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미국 여권의 위상 하락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2014년에는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미국 여권은 이제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로 추락했으며, 전 세계 227개 목적지 중 180곳에만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미국이 자국 입국을 비자 없이 허용하는 국가가 단 46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며, ‘비자 면제 접근성’과 ‘입국 개방성’ 간의 극심한 격차를 드러낸다. 이러한 순위 하락은 브라질의 미국 시민 비자 면제 철회, 중국의 무비자 입국 대상국 제외, 파푸아뉴기니 및 미얀마의 입국 정책 조정, 소말리아의 전자비자 시스템 도입, 그리고 베트남의 무비자 입국 확대 대상에서 미국 제외 등 일련의 ‘입국 허용 변화’에 따른 것이다. 헨리앤파트너스의 크리스티안 H. 케일린 회장은 이러한 현상이 “글로벌 이동성과 소프트파워의 역학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진단하며, 정치적 요인에 뿌리를 둔 미국의 후퇴와 고립주의적 사고방식이 여권 위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지난 10년간 헨리 여권지수에서 가장 큰 상승세를 보인 국가 중 하나로, 2015년 94위에서 2025년 현재 64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목적지가 37곳 늘어났으며, 헨리 오픈니스 지수에서도 눈에 띄게 상승하여 현재 65위에 올라 있다. 이는 중국이 추진하는 ‘개방 확대 전략’의 결과로, 걸프 지역 국가, 남미, 유럽 국가들과의 신규 협정을 통해 세계 이동성의 강자로 자리매김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여행 자유도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랜트손턴 차이나의 팀 클랫 박사는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개방이 자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향후 전 세계의 경제 및 여행 질서를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글로벌 이동성의 변화는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 간 협력과 개방성 증진을 통해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려는 국가들의 움직임은 국제 사회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의 글로벌 전략 수립에도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