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는 고도성장 시대의 종료 이후 30년 넘게 가계 소득과 소비가 억압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겪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수출 의존도를 높이며 세계 경제 환경 변화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전 연평균 4.8%와 7.1%였던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 및 실질 가계소비지출 증가율은 외환위기 이후 0.7%와 0.8%로 급감하며 소득과 소비의 둔화를 가속화했다. 이는 ‘경제 모르핀’이라 불리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고, 부동산 자산이 소득 증가분의 7.4배 넘게 증가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최근에는 고금리, 인구 감소, 성장 둔화가 맞물리며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가계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기에 나서기 어려워지면서 건설 투자 침체와 내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내수 부진 상황 속에서 소비 쿠폰 지급과 같은 단기적인 처방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 지원 방안, 특히 그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도입이 절실하다. 이는 ‘사회임금’ 혹은 ‘사회소득’으로 대표되는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의 결과물 중 일정 부분을 떼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으로 배분하는 것이 사회소득이며, 그 수준은 민주주의와 정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 사회지출 기준과 비교할 때, 한국의 사회지출 규모(GDP 대비 15.326%)는 OECD 평균(21.229%)보다 낮은 수준이며, 이는 국민 1인당 약 300만 원, 4인 가족 기준 연간 1200만 원의 사회소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가계 소비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은 이러한 사회소득의 절대적 과소, 시장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0.1%의 세후 월평균 실질수입은 1억 2215만 원인 반면, 소득 창출 활동자의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에 불과하며, 하위 41%는 최저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불평등 구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불평등과 내수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열쇠는 불공정한 조세 체계의 개혁이다. 한국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은 OECD 상위권에 속하지만,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낮으며, 조세에 의한 재분배 효과 또한 OECD 평균에 비해 미미하다. 이는 누더기 같은 각종 공제 혜택이 소득이 높을수록 과도하게 적용되어 세금 부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410조 원의 소득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약 101조 원의 세금이 줄어들었으며,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하위 30%는 421만 원에 그쳤다.
만약 현행 세금 공제 방식을 모두 폐지하고 확보된 세금을 인적 공제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4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의 지급이 가능해진다. 이는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은 순혜택을 보는 효과적인 재분배 수단이 될 수 있다.
불공정 조세 체계를 수술하여 마련된 정기적 사회소득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소득 강화는 ‘기본사회’의 한 축인 ‘기본금융’ 도입과 결합될 때,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 대전환 시대에 따른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