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민주주의의 회복력’, ‘평화의 정착’, 그리고 ‘유연한 실용 외교’가 제시되고 있다. 특히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된 이러한 방향성은, 단순히 개별 사건을 넘어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한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분단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평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했다.
이번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분단 체제가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남과 북을 가르는 장벽이 되었음을 지적하며, ‘분열과 배제가 아닌 포용과 통합,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통해 이를 극복하자고 선언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회복력’ 강화라는 거시적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안전한 일상의 보장을 위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역사적으로 독재가 전쟁을 출구로 삼았던 것과 달리, 민주주의는 평화를 선호하며, 이는 평화와 민주주의의 깊은 상관관계를 시사한다. 또한, 평화가 경제 발전의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평화는 땅이고 경제는 꽃’이라는 비유를 통해 평화가 경제라는 꽃을 피우게 하는 튼튼한 토대가 됨을 분명히 했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는 ‘평화’라는 가치 아래 ‘신뢰 구축’의 중요성이 재차 강조되었다. 대통령은 ‘신뢰는 말이 아닌 행동’에 있으며, 전단 살포 중단이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같은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접경 지역에 ‘일상의 평화’가 찾아왔다는 진단은 긍정적이다. 비록 지난 정부의 적대 정책으로 인한 깊은 불신이 남아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한반도 주변의 복잡한 국제 환경이 남북 관계 개선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제시되었다.
특히,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 관계’로 규정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주장 이후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통일’ 용어 삭제 주장에 대한 지혜로운 반박이다. ‘특수 관계’라는 개념은 두 개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분단 극복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각자의 강조점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열린 개념이다. 이는 ‘체제 존중’을 바탕으로 ‘흡수 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선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 6·15, 10·4,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 등 모든 남북 합의를 관통하는 핵심이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통일 문제에 대한 분열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 또한 담겨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핵 없는 한반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고도화된 북한의 핵 능력과 변화된 국제 환경으로 인해 협상 환경 조성이 쉽지 않은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했다. 따라서 남북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이 현재 북러 관계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지만,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는 새로운 해법 모색이 시급하며, 지난 30년간의 북핵 협상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염두에 둔 ‘외교적 노력’의 중요성 또한 강조되었다. 특히 한일 관계에 있어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협력’을 강조한 것은, 공급망 혼란과 무역 질서 변동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 된 ‘한일 양국의 상생 협력’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서로 신뢰를 쌓아간다면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며, 이는 세계가 새로운 지역 협력을 모색하는 흐름과도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지만, 9·19 군사합의 복원을 포함한 한반도의 긴장 완화는 북한에게도 필요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 대화가 필수적이다. 지금은 복합 위기의 시대이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다지고, ‘평화의 정착’을 이루며, ‘유연한 실용 외교’를 펼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김연철 인제대 교수 / 전 통일부 장관
성균관대학교에서 북한의 정치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연구원 원장 및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