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수준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독일, 일본, 영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에 비해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사고 사망자가 집중되고 있으며, 기업 규모로는 중소사업장, 연령대별로는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의 사고 사망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증가와 함께 외국인 사고 사망자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으며, 원하청 관계 속에서 위험이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문제도 지적된다. 이러한 현실은 건설업과 제조업 중심의 중소사업장 산재 사고 사망률 감소를 산업안전의 주요 과제로 제시한다.

정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나, 예산과 인력 부족, 잦은 노동자 이직 등으로 인해 지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의 경우,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며, 지원 대상 사업장을 늘릴수록 사업의 질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또한, 수십 년간 전문가와 정부 주도로 산재예방 사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자와 사업주가 제도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 산재예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기업은 산재예방 비용을 지출로만 인식하고, 노동자는 위험한 업무 수행 시 안전수칙 미준수를 ‘숙련’으로 여기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25년 9월 15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종합대책은 기존의 방대한 논의를 집약하고, 산재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에 있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변화로는 중소사업장 산재예방 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도록 하고, 노동자의 알권리, 참여 권리, 피할 권리 등 ‘노동안전 3권’을 규정하며, 산재 사업장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한 점이 꼽힌다.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노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산업안전보건의 주체로 규정하고, 산재예방 노력을 적극 독려한다는 점이다. 특히 각 기업별로 운영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원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도록 한 점은 기존의 ‘개별 기업 단위’에서 ‘사업장 단위’로의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또한, 노동계에서 꾸준히 요구해 온 작업중지권 확대를 ‘피할 권리’로 정의하고 보장을 강화했으며, 중소 사업장 대상으로 스마트 안전장비와 AI 기술 지원을 통해 자체 역량 강화도 꾀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제도 자체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현장에서의 작동성과 관리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아무리 좋은 산재예방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당사자인 노사가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노사가 산재예방의 주체로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개별 기업 차원의 노력을 넘어 지역 및 업종 차원으로 확대되어 발휘될 수 있도록 보다 세밀한 관리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종합대책이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한국의 산재 사고 사망률을 더욱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산업안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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