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연체채무 문제를 해결하고 채무자에게 재기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부채 탕감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력 강화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ESG 경영이 강조되는 오늘날, 기업과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불평등 완화 및 경제적 포용성 확대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연체자 개인의 책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113만 명에 달하는 장기 연체자들의 경제적 고립은 사회 전반의 생산성 저하와 비공식 경제 영역의 확산이라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고, 국회에서 배드뱅크 운영 예산 4000억 원과 새출발기금 지원 확대 예산 7000억 원을 신속하게 편성한 것은 이러한 거시적 맥락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적 실천 사례다. 특히 정부는 장기 연체 채무를 금융회사로부터 일괄 매입하여 소각하고,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며 취약 소상공인의 채무조정 감면 폭을 90%까지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부채 정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 약 125만 명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체의 가치와 미덕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마이클 샌델의 지적처럼, 개인의 어려움을 공동체의 회복력 증진 기회로 삼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은 단순히 빚을 없애는 행위를 넘어, 경제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을 다시 생산적인 활동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사회적 리셋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기도 하지만, 세계 주요국들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접근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소비를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챕터 7’ 개인파산 제도를 통해 성실한 채무자의 금융 활동 재개를 보호하고, 독일은 ‘개인파산 및 채무조정제도’를 통해 채무자의 신속한 경제 복귀를 촉진한다. 영국 역시 ‘부채 구제 명령(DRO)’을 통해 일정 기준 이하 채무자의 채무를 소각하며 고의적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엄격한 심사를 병행한다. 이는 정부의 정책 지원을 통한 정당한 채무조정이 경제 회복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 역시 장기 연체 채무 문제에 대해 단순한 감면을 넘어선 사회적 합의와 제도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채무 조정 대상자 선별 시 금융 정보, 소득, 부동산 보유 내역 등을 면밀히 확인하고, 재산 은닉 시 처벌 조항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취업 활동, 직업 훈련, 금융 교육 이수 등 ‘맞춤형 회복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책임 있는 사회 복귀를 유도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우가 “시장은 실패할 수 있으며, 그 실패를 교정하는 것은 정부의 정당한 역할”이라고 말했듯, 7년 이상 지속되는 연체는 시장 실패를 의미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정당하다. 장기 연체 채무자의 경제 활동 복귀는 개인 구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복원력을 회복하는 길이며, 이는 기업의 ESG 경영 확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와도 부합한다. 궁극적으로 채무자의 삶을 재설계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가, 낙인을 찍고 배제하는 사회보다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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