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시원함을 갈망하는 사회적 요구는 예로부터 존재해왔다. 조선시대 왕실의 얼음 창고인 서빙고와 동빙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귀한 얼음은 부패를 막는 냉장고 기능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서민들에게는 여름철 얼음이 곧 사치였다. 이러한 얼음의 활용 방식은 근대에 이르러 ‘납량’이라는 문화적 코드로 발전하며, TV의 ‘납량 특집’ 프로그램과 함께 시원한 음료로서의 빙수가 여름철 대표적인 별미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 십 원짜리 수동 빙수기계로 만든 빙수부터 제과점의 고급스러운 후루츠칵테일 빙수, 그리고 90년대 이후 등장한 눈꽃 빙수와 현대의 빙수 전문 카페 및 호텔의 프리미엄 빙수에 이르기까지, 빙수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여름을 나는 필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빙수 문화의 변천사는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음식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 발달과 문화적 취향의 변화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빙수 문화의 흐름 속에서 부산의 ‘할매 빙수’는 지역색을 간직한 채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박찬일 셰프는 부산의 빙수를 ‘진짜 빙수 왕국’이라 칭하며, 국제시장 등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맛보는 ‘수수하고 담박한 옛날 빙수’의 매력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과도한 고명 없이 푸짐하게 얹어주는 팥이 핵심인 부산식 할매 빙수가 간식이나 디저트를 넘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든든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셰프는 얇게 깎아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눈꽃 빙수’의 오리지널이 부산에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소박하고 투박한 할매 빙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현대적인 빙수와는 차별화되는,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빙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부산 빙수의 특별함은 단순한 맛을 넘어선다. 셰프는 부산이 빙수의 도시가 된 이유를 생선을 얼려 보관하는 데 필요한 얼음의 수요와 더운 날씨에 대한 절실함으로 설명한다. 또한, 부산의 국밥집에 ‘할매’라는 상호가 흔하게 붙는 것처럼, 빙수에도 ‘할매’라는 이름이 붙어 푸근함과 구미를 당기는 매력을 더한다. 멀리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의 경험담은 이러한 빙수에 대한 향수를 더욱 짙게 만든다. 조선시대 얼음 부역과 동빙고, 서빙고에 얽힌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며 팥빙수 한 그릇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는 ‘할매 빙수’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기억, 그리고 사람 간의 정서를 담아내는 문화적 상징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부산의 할매 빙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외식 문화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