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2026년 정부 예산안은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하려는 ‘방향 전환형 확장’ 재정 전략을 제시한다. 총지출 72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한 이번 예산안은 경기 둔화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과 신산업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의 축을 재편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보여준다. 총수입 증가율이 3.5%에 그치는 반면, 총지출은 54조 7000억 원 늘어난 점에서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통해 경제 활력을 제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빚을 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겠다는 제안으로 해석된다.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AI 기술 발전과 신산업 육성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데 있다. AI 3강 도약을 목표로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하고, ‘AX 스프린트 300’ 프로그램을 통해 300개의 생활 밀착형 제품에 AI를 신속하게 이식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AI 관련 예산은 3조 3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으로 3배 이상 확대되었으며, R&D 예산 역시 19.3% 증가한 35조 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ABCDEF(인공지능·바이오·문화콘텐츠·방위산업·에너지·첨단제조업)’ 분야의 핵심 기술을 고도화하고, 5년간 100조 원 이상의 국민 성장 펀드를 통해 유망 기업의 스케일업을 지원함으로써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동시에 ‘모두의 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 안전망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상향하고,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여 납입액을 매칭 지원하는 등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통해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고, 지역거점 국립대 육성 예산을 4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대폭 늘려 지역 균형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의료 및 교통 인프라 보강, 재난 대응 및 첨단 국방, 한반도 평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 확대 역시 국민 생활의 안정과 국가 안보 강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RE100 산단 및 분산형 전력망 구축, 전기차 전환 지원금 확대, 녹색 금융 강화 등은 민간의 전환 비용을 낮추고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문화·관광·콘텐츠 분야의 소프트파워 투자와 지역 관광 활성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은 민생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확장 재정 기조 속에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역대 최대 규모인 약 27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연례성 행사·홍보성 경비와 같은 경상비를 줄이고, 중복·저성과 사업 1300여 개를 정비하며, 의무지출 제도의 틈새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확보하여 핵심 과제에 재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줄일 것은 줄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체질 개선 없이는 확장 재정이 건전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국가 채무가 1415조 원으로 GDP 대비 51.6%까지 상승하는 상황에서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관리 재정 수지 적자 폭은 당분간 GDP 대비 4% 안팎에서 유지될 것이며, 금리와 환율 변동성은 국채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입 기반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세원 포착과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세제 정비, 사회 보험의 재정 구조 개선, 성과 중심의 예산 평가 제도화 등은 ‘확장 후 정상화’ 시나리오를 뒷받침할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AI 전환과 R&D 확대가 생산성 개선으로 빠르게 이어지고, 수출·투자가 회복되어 세입이 견조해진다면 채무 비율 상승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물 수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사업의 우선순위와 배분의 정밀성, 지역·세대 간 형평에 대한 더욱 엄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2026년 예산안은 단순한 재정 부양이 아닌, 미래 성장의 엔진을 교체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 전환형 확장’의 성격을 띤다. 속도와 질의 균형을 통해 구조조정으로 새는 돈을 막고, 미래 투자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며, 중장기적으로 총지출 증가 속도를 다시 낮추는 세 단계를 일관되게 실행할 때, 이번 확장 재정은 재정 불안을 키우는 비용이 아닌 체질 개선을 위한 투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의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은 2026년 예산안이 서 있는 현실적인 타협점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