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되는 복합적인 외교·안보 환경 속에서, 이재명 정부가 취임 100일을 맞아 ‘실용 외교’를 기반으로 한 정책 추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북-중-러 삼각 협력 강화, 급변하는 국제 무역 질서 등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국제 질서의 궐위 시대를 헤쳐나가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데뷔하고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실용 외교의 기반을 다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실용 외교’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지속 가능한 동맹 발전을 위해 상호 이익을 강조하며, 미국이 한국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투자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원칙을 갖고 대미 협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한일 관계에서도 급변하는 무역 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양국의 공동 대응 필요성을 제기하며 실용 외교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와 미국의 일방주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소지역 협력’이라는 새로운 외교 트렌드에 부응하는 행보다. 비록 역사 문제 인식의 차이, 일본 총리 교체 등 변수가 존재하지만, 일본이 달라진 국제 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실용 외교’ 기조는 다가오는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APEC은 지속 가능한 한미 관계의 기반을 다지고, 한중 관계 발전의 기회를 모색하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장이 될 전망이다. 나아가 베트남, 칠레 등 동남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외교 다변화를 통해 급변하는 외교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남방 삼각과 북방 삼각의 진영 대립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천천히, 일관되게’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대와 같은 이념이 아닌 ‘이익’이 작용하는 현재의 북방 삼각 관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식하며, 한중 관계 회복을 통해 미중 대화를 중재하고 한중 경제 관계의 경쟁과 협력 병진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 관계 회복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된다.
북한이 ‘북방 정책’에서의 생존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를 포함한 ‘남방 정책’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같은 선제 조처를 시행했으며, ‘9·19 군사합의’ 복원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비무장지대 방벽 건설과 대남 비난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협상이 시기적으로 민감함을 보여준다.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북한이 ‘북방 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남방의 수요’를 느낄 때까지 기다리며, 긴장으로 인한 불신 해소를 위한 신뢰 형성 과정을 시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주 APEC이 한반도 평화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 현재 진행되는 국제 질서의 변화는 구조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이러한 위기 극복의 핵심은 ‘국내적 통합’에 있다는 분석이다. 내부 분열은 대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며, 특히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에서는 내부 분열이 국제화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내적인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직면한 국면의 복잡성을 국민과 공유하고, 국민 역시 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세계적인 현상 속에서도, 외교·안보 분야만큼은 국회에서의 ‘협치’ 노력이 중요하며,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만, 더 험난한 산을 넘기 위해서는 외교·안보 부처의 지속적인 혁신, 민관협력의 제도화, 그리고 국민적 지지 기반 확대를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북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 통일연구원 원장 및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