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가치를 미래 세대와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한 여행 프로그램 「2025년 하반기 왕릉팔경」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실천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유적 답사를 넘어, 조선 왕실에서 대한제국 황실로 이어지는 역사적 맥락과 예제(禮制)의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참가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11월 10일까지 총 22회에 걸쳐 운영되며, 8월 21일부터 매월 네이버 예약을 통해 선착순으로 신청 가능하다.

이번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특히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차별화된 의미를 갖는다. 조선왕릉의 웅장함과 함께 대한제국 시기 황실의 역사적 격변을 조명함으로써, 참가자들은 한국 근대사의 전환기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구리 동구릉에서 시작해 남양주 홍릉과 유릉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각 능역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제도의 변화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구리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해 총 9기의 능침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이다. 이곳에서는 태조의 유언으로 봉분을 덮은 억새 전통, 조선 왕릉 표석에 전서체(篆書體)가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예제에 엄격했던 학자 송시열이 왕릉 표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전서체 사용을 주장했던 일화는, 기억을 보존하고 왕릉의 위상을 격상시키려는 당시의 노력을 보여준다. 또한, 정자각과 같은 왕릉의 핵심 의례 공간과 그 안에 담긴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을 상징하는 구조는 유교 예법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는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순종 황제의 능행길은 대한제국이 주권을 상실해가는 비극적인 역사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1908년 순종이 반포한 「향사리정에 관한 건」 칙령은 제사 횟수를 축소하는 등 예제 변화를 보여주며, 이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반영한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 조선 왕릉의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르며,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등에서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

또한, 경릉의 삼연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세 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합장 형식으로, 헌종과 두 왕비가 함께 모셔진 독특한 사례다. 이곳의 비석은 여러 차례 다시 새겨진 흔적을 보여주는데, 이는 석비 제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당시의 사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홍릉의 비각 표석 논쟁 역시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이처럼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둘러보는 것을 넘어, 각 능역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제도의 변화,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가자들이 능동적으로 역사를 학습하고 미래 세대가 문화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지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문화유산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노력은 향후 다른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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