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이 유엔 회원국 전원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확장을 넘어,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특히 이번 외교적 성과는 분쟁과 독재 정권의 몰락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격변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번 외교적 쾌거는 2025년 4월 10일, 마지막 미수교국이었던 시리아와의 외교 관계 수립으로 완성되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극비 방문을 통해 이루어진 이번 수교는 마치 한 편의 외교 첩보극을 연상케 하며, 대한민국 외교의 지형도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조 장관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 어렵게 마련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리아를 방문했다”며 이번 수교를 ‘끝내기 홈런’에 비유하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시리아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난해 12월 초,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리아해방기구(HTS)가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이후 54년간 이어진 알아사드 부자 세습 독재는 HTS의 열흘간의 신속한 수도 장악과 함께 막을 내렸다.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리던 알아사드는 후원국인 러시아로 도주했으며, 정부군은 이렇다 할 저항 없이 투항했다. 이러한 독재 체제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억압과 통제로 내부 여론을 차단한 결과, 체제의 몰락 징후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부패와 불신 속에서 한순간에 무너진 독재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중동 정세의 급변 역시 시리아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촉발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역내 ‘새로운 질서’ 작전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이 후원하던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와해되었고, 이란 혁명수비대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HTS가 다마스쿠스로 진격할 당시, 시리아의 오랜 지원 세력이었던 이란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이 묶인 러시아 역시 시리아 정부군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중동 정세의 변화는 북한에게도 실존적인 불안감을 안겨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과 오랜 혈맹 관계를 이어온 시리아 정권의 몰락은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에 의존하는 생존 전략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러시아와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까지 약속한 북한으로서는, 최근 미국과 러시아 간의 관계 변화를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지난해 2월 북한과만 수교해 오던 쿠바와 외교 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이번 시리아와의 수교까지 성공시키며 유엔 회원국 전원과 외교 관계를 맺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북한이 주요 해외 공작 거점을 또다시 잃게 되면서 외교적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알아사드 정권 붕괴 당시 현지 북한 대사관은 서둘러 철수한 바 있다.
한편, 2025년 1월 HTS 수장으로 취임한 아흐메드 알샤라 대통령은 전쟁으로 붕괴된 경제와 국가 제도를 복구하고 헌법 채택 및 선거 시행까지 최대 4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전 이후 경제가 85% 이상 위축되고 인구의 90%가 빈곤선 이하에 놓인 절망적인 상황은 시리아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리아는 한국의 경제 성장 비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발전 모델을 배우기 위한 실무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또한 개발 경험 공유, 인도적 지원, 경제 재건 협력을 제안했다. 한국이 중동 국가들에게 아시아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 경제를 이룬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을 가진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사회주의 체제나 서구식 자유주의 모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대한민국의 경험은 새로운 시리아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