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로의 급격한 진입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2050년에는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 되고, 207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울트라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연금재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세대 간 정의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적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2025년 봄, 18년 만에 마침내 국민연금 개혁안이 합의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번 개혁은 단순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모수개혁을 넘어, 국민연금 제도의 근본적인 운영 방식을 ‘준적립방식(partially funded)’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88년 3%로 시작하여 1998년 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된 이후 27년간 동결되었던 보험료율이 이번 개혁안을 통해 13%로 인상되었다. 이는 국민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부담을 높이는 동시에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부분 강화한 정치적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보험료율 인상은 당장 수년간 적립기금을 헐어 쓰지 않고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금의 운용수익이 재정의 한 축으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는 급한 불을 끄고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체제 완결’이 아닌 ‘지속가능한 연금을 향한 로드맵의 출발점’으로서의 중요성을 갖는다.

전통적인 부과방식(pay-as-you-go) 연금은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의 연금을 부담하는 구조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실제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적립기금 없이 이 구조를 유지하다가 보험료율을 20% 이상으로 높이거나 대규모 국고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반면 적립방식(funded)은 세대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부담과 급여를 조정할 수 있는 ‘셀프 부양’ 구조를 통해 고령화 충격에 보다 자유롭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1,200조 원 이상의 적립기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직 기금이 계속 쌓이고 있는 구간에 있다. 이번 보험료율 인상은 이 기금 누적 구간을 연장하고, 보험료 수입과 기금운용수익이라는 두 개의 재정 축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준적립방식’의 연금 운영 구조를 제도화하는 첫걸음이다. 이는 생산인구 감소라는 충격 속에서도 적립기금이 잘 운용된다면 청년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번 개혁안에는 청년세대의 불안을 해소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도 포함되었다. 국민연금법 제3조의 2 개정을 통해 국가의 연금지급 책임을 명문화하였고, 출산크레딧을 첫째아부터 12개월 인정하며 군복무크레딧도 12개월로 확대하는 등 청년층의 연금 가입 기간을 보완하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번 개혁은 단순한 4%포인트의 보험료 인상을 넘어, 기금이 고갈되기 전에 구조개혁을 준비할 수 있는 전략적 시점에 이루어진 역사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한국은 연금의 위기 시계가 본격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수의 나라 중 하나로서, 이번 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한 중요한 준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불어 이번 개혁은 모수개혁을 넘어 구조개혁 논의를 본격화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향후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연령 상향,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이 필요하며, 기초연금의 빈곤해소 집중, 국민연금의 소득비례 연금 재편, 적용포괄성 및 가입기간 확대, 퇴직연금 내실화 등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비 방향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연금은 특정 세대의 이익이 아닌, 세대 간 신뢰를 지키고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로서, 이번 개혁은 그 원칙을 유지하며 미래를 향한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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