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확산되는 디지털 행정 속에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스마트폰 앱 설치부터 정부24 민원 처리, 무인민원발급기 사용까지 디지털 기기 활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행정 서비스 접근성에 대한 장벽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람 중심’의 가치를 재고하게 만든다.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은 이러한 현실을 민원 현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업무 시작 전, 인공지능 챗GPT를 활용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접한 후, 그는 민원 창구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 민원인들을 마주하며 깊은 고민에 빠진다.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발급받기 위해 무인민원발급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기기 조작에 익숙지 않아 씨름하는 어르신의 모습은 김 주무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5분이면 끝날 일을 몇 시간째 붙잡고 있거나, 시내까지 20분 넘게 운전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 어르신들을 보며, 그는 기술 발전의 이면에 존재하는 아날로그적 고충을 절감한다.
모바일 신분증 발급을 원하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앱 설치, 본인 인증, QR코드 촬영 등 익숙하지 않은 절차 앞에서 망설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 주무관은 어르신들에게 “하실 수 있다”, “자꾸 해보면 익숙해진다”고 격려하며 발급 과정을 돕지만, 현장을 벗어난 이후에도 능숙하게 사용하실지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함께 가자’는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김 주무관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음에도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보며, 마치 ‘기약 없는 마라톤’을 하는 마라토너에 비유한다. 디지털 트랙 위에서 빠르게 뛰어가는 젊은 세대의 뒤편에서, 불편하고 무거운 신발을 신은 듯 첫걸음을 망설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디지털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단순한 행정 처리자를 넘어, 디지털 세상에서 어르신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돕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주자가 지칠 때 힘을 북돋아주듯, 공무원은 어르신들이 디지털 기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격려해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사람의 온기만큼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결국 공무원의 역할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어,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고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씨름하거나 정부24에서 ‘세대주 확인’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보며, 그들에게 조용히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나는 이런 걸 못한다”며 자녀의 도움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모습 속에서, 그는 언젠가 어르신들이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늦는 것이 아니다”, “행정 서비스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날을 소망한다. 이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동등하게 행정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