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인 김기탁 소장은 최근 1년간 이어지고 있는 출생아와 혼인 증가세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부모들이 일상에서 “아이를 낳길 잘했다”고 확신할 수 있도록 양육 친화적인 생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불편함이 쌓이면 통계 상승세가 언제든 꺾일 수 있기에, 지금이야말로 ‘생활 장치’를 촘촘히 마련할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특히 가족 화장실과 기저귀 교환대를 단순한 보육 정책이 아닌 ‘생활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년 11월 27일 기준으로 서울시 개방·공중화장실 3,708곳 중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곳은 1,123곳(30%)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여성 화장실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아이와 함께 외출한 아버지가 기저귀 교환대를 찾지 못해 겪는 어려움, 혹은 딸과 발레 수업에 나선 아버지가 남성 탈의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성평등한 돌봄 환경 조성과는 거리가 멀며, 더 나은 성평등 돌봄을 위해서는 성평등 설비가 먼저 갖춰져야 함을 시사한다.
정책 추진과 더불어 인프라도 함께 발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국가공무원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아빠 교육·캠프 프로그램 만족도 역시 높게 나타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2025년, 가족센터 등 공공·위탁 기관들이 예산 삭감 및 부족으로 프로그램 기획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교환대·유아 세면대 설치 예산은 ‘부대비’로 분류되어 삭감 1순위가 되기 쉽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 신도시와 동네 상가 간의 인프라 격차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개념에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들의 행동은 이미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순수 자발적 참여로 아버지 역할, 소통, 놀이 교육 등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서울시의 ‘유아차 런’과 ‘탄생응원 서울축제’ 등은 건강한 양육 문화와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부모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서울시 100인의 아빠단 50가족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공원 캠핑장 공동 양육 체험은 “양육 스트레스가 줄고 관계가 깊어졌다”는 후기를 낳으며 더 많은 양육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를 증폭시켰다.
김 소장은 이러한 아버지들의 열정을 실제 ‘일상의 편의’로 이어주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행동이 증명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하며, 출산율 반등을 지속시키기 위해 네 가지 기본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첫째, 국공립 시설, 대중교통 환승 거점, 대형 민간시설에 가족 화장실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남녀 화장실 모두 유아 거치대, 교환대, 유아 세면대, 벽면 발판을 동등하게 갖추도록 ‘생활 SOC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성평등 인프라 표준화’다. 둘째, 공공 및 위탁 시설의 아버지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증액하고 주말 자녀 동반 프로그램 및 시설 인프라 개선을 통해 아버지들의 육아 참여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교육·체험 프로그램에서 얻은 만족도를 인프라 개선 요구로 연결하는 ‘문화와 정책의 선순환 구조 확립’이다. 마지막으로, 체험형 행사와 연계하여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돌봄 시민권’ 캠페인의 확산이다.
일상적인 양육 환경이 불편한 나라라면 단기적인 출산율 반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김 소장은, 아이를 낳으면 축하받고 어디서든 편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도시와 나라라는 기본이 갖춰질 때, 출산율 그래프보다 더 큰 ‘행복지표’가 우리 삶을 채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거창한 구호보다 화장실의 작은 교환대, 스포츠 시설의 가족 탈의실과 같이 눈높이를 맞춘 ‘생활 장치’야말로 지속 가능한 반등의 열쇠이며, 지금이야말로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