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확실성과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민 통합’을 핵심 기조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이했다. 역대 정부가 경험하지 못한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정부는 최선을 다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앞으로 5년간의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성과 도출과 지속적인 국민 통합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극심한 평가를 받았다. 일부에서는 민주화 이후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강력한 정부 탄생을 기대했지만, 2025년 6월 대선 결과는 1~2위 후보 간 득표차가 크지 않았고 이재명 후보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며 범 보수 진영의 견고한 반대 정서를 확인했다. 오히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내수 침체, 0%대 경제성장률 예고, 통상 환경 악화, 껄끄러운 주변국과의 외교 복원 등 역대 최악의 대내외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역설적이게도 대선에서의 압승 부재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민 통합적 정국 운영을 강제하는 측면으로 작용했다. 취임 연설에서 “정의를 위한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 정부”를 선언하며 진영을 망라한 국민 지지가 국정 추진 동력과 개혁 성과의 좌초를 막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중도를 만족시키고 보수진영을 포용하며 국민들에게 정권교체로 인한 효능감을 주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다.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발언에 대한 의심의 시선도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국민 통합 노력과 실용주의 노선이 진심이었다는 평가가 합당하다.
실제로 인사에서는 실용주의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키는 등 능력만 있다면 보수진영 인사도 적극 기용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시민이 직접 공직자를 추천하는 국민추천제를 통해 약 7만 4천여 건의 추천이 접수되었고, 일부 공직자는 추천 후보군에서 선발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수위 없이 출발하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의원들이 장관직에 다수 기용되었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특정 지역이나 대학에 편중되지 않고 민간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를 주요 공직에 깜짝 기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소통 강화 노력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당 대표 시절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왔던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른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방향을 직접 설명했다. 일부 국무회의 전체 과정을 언론에 공개해 국정 의제 논의와 대책 마련 과정을 투명하게 밝혔으며, 국무위원 간 격의 없고 실용적인 회의 방식도 호평을 받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책 아이디어를 받는 방식도 새롭게 시도되었고, 관행적으로 비공개되던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과 대변인 질의응답 과정을 모두 공개하며 투명성을 제고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 행보도 호평을 이끌어냈다. 6월 광주 군공항 이전 갈등 중재, 산업재해가 발생한 SPC 공장 방문 및 경영진 해결책 청취, 반복되는 산업재해 관련 국무회의에서의 건설 면허 취소 등 해결 방안 제시, 외국인 노동자 학대 사건 언급, 이태원 참사 유가족 면담, 산림청 책임 문제 지적 등 국민들이 새 정부에 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발로 뛰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시스템이 아닌 대통령 개인기에 의존하는 ‘만기친람’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수치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6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64%를 기록하며 대선 득표율 49.4%보다 약 15%포인트 높았다. 9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긍정평가 63%, 부정평가 28%로 정권 초반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며 진보 진영뿐 아니라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에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100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출범 초기 인사 논란은 피하지 못했다. 오광수 민정수석의 사퇴,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의 자진 사퇴 등으로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과거 당 대표 시절 변호를 맡았던 법조인들의 대거 중용은 보은 인사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지율 하락의 위기 순간은 8·15 특별 사면 때였다. 조국 전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 사면, 뇌물 혐의 실형 야당 정치인 사면 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해지며 긍정 평가가 56%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가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호평을 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과제는 앞으로의 5년이다. 현재의 우호적인 국민적 기대가 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질 것이 명백하다. 윤석열 정권 때보다 경제 지표가 호전되고 있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정도의 경기 회복은 더디다.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1% 안팎의 경제 성장률 예상, 대기업 해외 공장 이전으로 인한 고용 시장의 구조적 한계는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과제다.
대통령은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여당이 야당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고 강경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의 설전이 대표적인 장면이며, 야당에 대한 특검 수사의 장기화, 보수 진영의 반발 또한 국민 통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체포로 인한 한미 관계 긴장, 미국의 지속적인 통상 압력, 방위비 분담금 및 국방비 증액 압박도 난제다.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과의 우호적 관계 구축 또한 낙관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대통령은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대 진영을 설득하며 대화에 참여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새 정부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었으나,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후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였다는 평가처럼, 정부는 본인의 유능함을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며, 곧 통과될 정부 조직 개편안 통과 이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장관들이 앞장서야 한다. 정부의 선의에 대한 호평은 100일까지 유효하며,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성과로 국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