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과 같은 초국가적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지역 협력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과 아세안이 맺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 수립은 단순한 외교적 성과를 넘어, 거대한 지역 및 글로벌 질서 재편에 있어 주목할 만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CSP는 아세안이 역내 주요 파트너들과 맺는 최고 수준의 협력 단계로, 이는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협력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공식화된 CSP 수립은 한국이 호주, 중국, 미국, 인도, 일본에 이어 아세안과 이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을 맺는 여섯 번째 국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세안은 역내 힘의 균형을 중시하며 대화상대국과의 관계 설정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단순히 상대국의 요청만으로 CSP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아세안의 원칙은, 이번 한국과의 CSP 수립이 한국이 아세안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한국이 공급망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 핵심적인 협력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CSP 수립은 이제 막 관계의 성숙도를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한-아세안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실질적인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아세안은 CSP 파트너들에게 기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실질적이며 상호호혜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CSP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120대 협력 과제’를 발표한다. 이 과제들은 기존의 ‘한-아세안 연대구상’ 사업들과 아세안의 요청을 반영한 신규 사업들로 구성되며,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인구구조 변화와 같은 미래지향적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세안이 직면한 디지털 경제 성장 가속화 및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라는 도전 과제 앞에서 한국의 경험과 기술력은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있어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 구조를 지닌 아세안과의 인적 교류 확대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아세안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지역 내 안정 유지와 비전통적 안보 위협 공동 대응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한-아세안 관계의 발전은 이번 CSP 수립을 통해 미래지향적 협력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심화시켜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2025년은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 채택과 함께 한국-아세안 CSP 추진을 위한 새로운 행동계획(Plan of Action 2026-2030)이 마련되는 중요한 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아세안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 기반이 더욱 공고해지고,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