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사회 진입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한국 사회는 연금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연금은 도입 이후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 개혁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번번이 논의는 유예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25년 봄, 18년 만에 타결된 국민연금 개혁은 단순한 보험료 인상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연금 시스템 구축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실천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제도의 ‘완결’이 아닌, 더 나은 연금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인상하는 모수개혁을 포함한다. 이는 국민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부담을 높이는 동시에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부분 강화한 정치적 절충안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당장 수년간은 적립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금 운용 수익이 재정의 한 축으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기금 고갈 시점을 8~15년 연장하는 효과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분명한 진일보다.

이번 개혁은 국민연금 도입 37년 만에 제도 설계 시 결정되었던 ‘3-6-9% 인상 계획’ 이후, 27년간 동결되었던 보험료율을 처음으로 인상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단순한 재정 수지 보전 조치를 넘어, 연금 재정 운영 방식을 부과 방식(pay-as-you-go)에서 준적립방식(partially funded)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전통적인 부과 방식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반면, 적립 방식은 세대 내부에서 자율적인 조정이 가능하여 고령화 충격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의 상황에서, 기금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선제적으로 준적립방식으로의 전환 기반을 마련한 것은 노동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개혁안에는 청년 세대의 불안을 해소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담겨 있다. 국민연금법 제3조의 2 개정을 통해 국가의 연금 지급 책임을 명문화했으며, 출산 및 군복무 크레딧을 확대하고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을 강화하는 등 청년층의 연금 가입 기간을 보완하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이는 단기적인 재정 안정뿐만 아니라, 미래 주역인 청년 세대가 연금 제도를 신뢰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요한 조치다.

이번 개혁을 통해 한국은 연금 위기 시계가 본격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9%에서 13%로의 보험료율 인상은 단순히 기금 고갈 시점을 미루는 것을 넘어, 기금을 유지하고 운용 수익을 확보함으로써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높이려는 ‘철학적 전환’을 보여준다. 앞으로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 연령 상향, 자동 조정 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과 함께, 기초연금의 빈곤 해소 집중, 국민연금의 소득 비례 연금 재편, 퇴직연금 내실화 등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비 방향이 함께 추진된다면, 미래세대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적 연금이 세대 간 신뢰를 지키고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라는 원칙을 견지하며, 준적립방식과 기본 보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번 개혁은 성숙한 연금 논의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