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의 안전 패러다임이 ‘예방’에서 ‘예측’으로 전환되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산업재해 예측 및 대응 시스템 구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고 발생 건수를 줄이는 것을 넘어, 예측 기반의 선제적 대응을 통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사회적 요구와 기술 발전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약 13만 6천 명의 산업재해자와 2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이는 특정 업종이나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 전반의 구조적, 기술적,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부는 ‘제조안전고도화기술개발사업’을 2025년부터 추진하며, AI 기술을 활용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식별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초기 적용 업종으로는 이차전지, 석유화학, 섬유 등 단일 사고의 규모가 크고 반복적인 사고 유형이 뚜렷한 분야가 선정되었다. 2024년 6월 화성시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와 같은 사고는 이러한 기술적 전환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또한, 섬유 산업의 경우 수작업 공정의 비중이 높아 끼임, 절단, 넘어짐 등의 인적 재해와 유해물질 노출 위험이 상존한다.
AI 기술은 이미 이론 단계를 넘어 실증 단계에 접어들었다. 수년간 축적된 사고 데이터, 예를 들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총 3만 8584건에 달하는 끼임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는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실증 과정에는 ‘제조안전 얼라이언스’와 같은 협업 구조를 통해 기업, 연구기관, 지자체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조선업계에서는 AI 기반 안전 시스템의 해외 수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안전 확보는 기술 자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공정의 복잡성 증가, 작업자의 다양화, 작업 환경의 빠른 변화 속도는 숙련이나 경험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만들고 있다. AI와 같은 기술은 예측과 판단의 공백을 메우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이러한 기술이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작업 현장의 목소리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즉, 산업안전은 단순히 자동화 기기나 정교한 시스템의 도입을 넘어, 이를 운영하고 적용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보호하려는 조직의 의지와 문화가 함께 성숙해야 진정한 안전을 이룰 수 있다.
궁극적으로 산업안전 기술 발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AI 기술은 작업자의 스트레스, 행동 이상, 피로도 등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신규 인력 등 다양한 취약계층을 고려한 포용적인 기술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정교한 시스템 도입에도 불구하고 현장 구성원의 인식과 조직 문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술, 정책, 그리고 사람이라는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산업 현장의 안전은 현실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산업 현장의 노동이 더 이상 생명의 위험과 직결되지 않도록, 기술은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뿐이며,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과 사회 전체의 선택이 자리한다. 산업안전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낯선 현장의 리스크에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이 시대의 안전 문화를 구축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안전은 비용이 아닌 책임이며, 예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