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과 산업 발전은 그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생태계’를 간과해서는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생태계의 건강성은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생태계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여러 산업 현안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은 더욱 명확해진다.
과거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 캠프에서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가 유권자들의 민감한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복잡한 산업 현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계’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 1992년, 당시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던 조지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경제난에 시달리던 미국 유권자들의 시선을 국내 경제 문제로 돌려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의 사례는,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핵심 메시지로 전달하는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생태계가 번성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종 다양성’이다. 이는 마치 먹이사슬, 상호 수분, 분해 및 재생산 등 다양한 종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는 것과 같다.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처럼 단일 품종 감자에 의존하다가 감자역병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사례는 종 다양성이 깨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태양 에너지로부터 시작되어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어지는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은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이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이 이를 분해하여 토양으로 되돌리는 과정은 순환 구조가 깨지지 않아야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개방성과 연결성’은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를 통해 생태계의 생존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취약해지며,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발생했던 근친교배의 폐단은 이러한 폐쇄성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는 지역 개발 정책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지방을 살린다며 허허벌판에 혁신도시를 조성했으나, 정작 배우자 일자리가 없어 젊은 부부들이 내려가지 못하는 현실은 ‘종 다양성’과 ‘개방성’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또한, 인구 증가 없이 신도심만 마구잡이로 개발하면서 원도심이 유령도시처럼 공동화되는 현상은 생태계의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원에서 부산까지의 지리적 거리가 가깝더라도 ‘마음의 거리’가 먼 이유는 통근이 가능한 교통망, 즉 ‘연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일자리와 생활이 연결되는 ‘생태계’의 조성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명확히 드러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이유 역시 생태계 경쟁력의 약점에서 찾을 수 있다.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생태계에서 삼성전자는 IP 파트너의 숫자나 패키징 기술 등 여러 면에서 TSMC에 뒤처져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생태계 전쟁’으로 바뀌었지만, 이를 간과한 결과는 현재의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것은, 결국 자체적으로 생태계를 구축하고 번성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사의 상당 부분은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해가 지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원도심과 독수공방의 혁신도시를 만든 현실은 생태계적 접근의 부재를 명백히 보여준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현재 한국 산업의 문제를 묻는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It’s the ecosystem, stupid)!”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제는 개별 기업이나 정책의 단편적인 성과를 넘어, 이러한 ‘생태계’ 관점에서 한국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