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 콘텐츠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제주도는 독특한 자연경관과 지역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제주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제주만이 가진 매력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용머리해안은 10년 만에 다시 찾은 이에게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로컬 100에 선정된 제주의 대표적인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약 10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형성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이는 한라산과 산방산보다 앞서 생성된 지질학적 가치를 지니며, 수성화산 분출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쌓인 화산재 지층은 마치 거대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형성된 검은 현무암과 옥색 바다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태곳적 제주를 그대로 마주하는 듯한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지형적 특징과 함께, 진시황이 제왕의 탄생을 막기 위해 용의 혈맥을 끊었다는 전설은 이곳에 신비로움을 더하며,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인간의 짧은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미끄럽지 않은 편안한 신발을 신고,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를 맞춰 방문해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용머리해안은, 직접 경험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100만 년의 시간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깃든 용머리해안을 제대로 음미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바로 제주의 대표적인 로컬 푸드인 ‘고사리해장국’이다. 과거 물과 곡식이 부족하여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제주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두 가지 주요 작물은 고사리와 메밀이었다. 특히 고사리는 화산암에서도 강한 뿌리를 내리고 빗물을 저장하는 생명력 강한 식물로, 제주의 생태계와 식재료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삶아 말려 독성과 쓴맛을 제거한 고사리는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였으며, 먹을 것이 부족했던 제주에서 그 가치는 더욱 높았다.
고사리해장국은 돼지를 주요 가축으로 삼았던 제주 전통 식문화의 산물이다. 잔치 때 잡은 돼지의 뼈로 우려낸 육수는 다양한 국 요리의 기본이 되었는데, 모자반을 넣으면 ‘몸국’, 뼈를 넣으면 ‘접작뼈국’, 그리고 고사리를 넣으면 ‘고사리해장국’이 탄생했다. 육지에서 소고기를 대신하여 식감과 질감을 더했던 고사리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가루와 만나 걸쭉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국물을 만들어낸다. 메밀 전분이 더해져 걸쭉해진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고 구수하며, 제주 방언으로 ‘베지근하다’고 표현되는, 기름지면서도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국물 맛이 베지근하우다!”라는 말은 맛을 제대로 칭찬하는 최상급 표현으로, 이 말처럼 고사리해장국은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깊은 맛을 선사한다. 밥 한 공기를 말아 먹으면 흡사 죽처럼 되직해지는 고사리해장국은 입에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서 탄생한 담백하고 유순한 맛의 고사리해장국은, 마치 창밖으로 보이는 유채꽃이 핀 산방산과 그 발아래 엎드린 용머리해안의 풍경처럼 제주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처럼 100만 년의 시간을 품은 용머리해안과 제주의 삶과 정서가 녹아든 고사리해장국은, 제주라는 땅이 품고 있는 거대한 자연의 힘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를 동시에 보여주는, 문화관광적 가치가 매우 높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타 지역에서도 지역 고유의 자연 유산과 전통 음식을 결합한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며, 제주의 이러한 성공 사례는 향후 지역 관광 산업 발전의 중요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