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 방식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 공공부문의 데이터 관리 방식이 AI 시대의 지능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AI의 특성상, 데이터의 질과 접근성이 AI의 성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IT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의사소통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인공지능에 파편화된 문장만을 겨우 전달하는 조직과, 모든 맥락과 검토에 사용한 참고 자료까지 투명하게 공유하는 조직 간의 AI 활용 능력 차이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핵심은 ‘데이터’이며,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데이터는 AI가 ‘과적합’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마치 주사위를 세 번 굴려 6이 나왔다고 해서 그 주사위가 6이 잘 나오는 것이라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며 일정한 확률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데이터는 현재 ‘D 드라이브’에 파편화되어 저장되어 있다. 이는 데이터가 수명을 다해 포맷될 때 함께 사라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맥락, 암묵지,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이 포맷과 함께 소실되며, 이는 미래 공무원들이 활용할 AI의 잠재력을 아무도 알지 못한 채 함께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높은 직위로 올라갈수록 보고서가 짧아져야 한다는 인식과 ‘1페이지 보고서’를 능숙하게 작성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자간과 장평까지 완벽하게 조정하며 한 글자라도 줄을 바꾸거나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보고서 작성 능력은, 데이터의 맥락을 담아내기보다는 형식적인 완결성에 치중하게 만든다. 이는 마치 아마존의 ‘6 페이저’와 같이 회의에 앞서 구성원 모두가 6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작성하고 공유하며 내용을 숙지하는 실리콘밸리의 방식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마존의 ‘6 페이저’는 도입부, 목표, 원칙, 사업 현황, 교훈, 전략적 우선순위, 부록으로 구성되며, 특히 목표와 원칙을 앞에 제시하여 방향성을 명확히 한다. 또한, 파워포인트(PPT)와 같은 프레젠테이션 문서보다는 완전한 서술체로 작성된 메모를 통해 사고의 명확성을 강제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파워포인트의 불릿 포인트(글머리 기호) 뒤에는 많은 엉성한 사고를 숨길 수 있다”며, “서술 구조를 가진 완전한 문장을 써야 할 때는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1페이지 보고서 작성 능력만을 강조하는 현재의 공공부문 문화가 오히려 본질적인 사고 과정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리콘밸리의 협업 시스템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며, 위키 엔진을 활용한 게시판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재무 및 인사 부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서가 게시판을 공개로 설정함으로써, 모든 참가자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구글 입사 개발자가 첫날부터 핵심 자산인 검색엔진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논의 과정과 자료가 축적되는 공개된 게시판은 문서 공유를 넘어 ‘맥락’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풍부한 데이터셋을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공공부문은 ‘D 드라이브’에 파편화된 데이터와 형식에 치중한 보고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요한 결정이 필요한 보고서는 반드시 서술체로 작성되어야 하며, 이는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어렵게 하고 ‘더 나은 사고’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강제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맥락을 공유하는 데 백만 배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훨씬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쓸 자격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관리 및 활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시급하다. 마치 잉크젯 프린터를 샀다가 잉크값으로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처럼, 1페이지 보고서는 당장의 효율을 가져다주는 듯 보이지만 결국 총소유비용(TCO) 측면에서 비싼 ‘싸구려 잉크젯’과 같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