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문화 역수입(Cultural Reimportation)’ 현상이 주목받으며, 이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한국 문화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정체성 재확립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본국에서 외면받던 문화 콘텐츠가 해외에서 먼저 조명받고 다시 자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는 이 현상은, ‘자포니즘(Japonisme)’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사례와 같이, 문화 정책의 방향성을 재검토하고 자국 문화의 잠재력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문화 역수입의 흐름은 K-팝과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문화적 자기 확인’ 심리와 맞물려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는 문화 역수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부두 노동자들의 춤에서 시작된 탱고는 19세기 말 유럽 상류층의 관심을 받으며 예술로 승화되었고, 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이어졌다.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재발견을 통해 ‘예술’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자국 내에서 대중적 인쇄물로만 여겨졌다. 유럽 예술가들이 포장재로 쓰인 우키요에에서 혁신적인 구도와 색채를 발견하며 일본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일본 내부에서도 우키요에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는 ‘우리 것’에 대한 자국 내 인식 부족이 외부의 평가를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판소리, 막걸리 등과 함께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이러한 문화 역수입의 흐름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 고유의 정서, 가족주의, ‘K-신파’적 감수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동남아, 중남미 등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었으나, 해외 시청자들이 보여준 깊은 감동과 공명은 한국인들 스스로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감정의 DNA’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과 중남미권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은, 한국적 정서와 보편적 감성 사이의 강력한 소구력을 입증한다. ‘폭싹 속았수다’의 성공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을 넘어, K-가족주의, 강인한 여성 서사 등 한국적 가치가 글로벌 문화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정서의 수출’이 한국적 정체성의 재확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K-팝과 드라마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 국내에서 ‘국가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과정은, ‘한류’라는 용어 자체가 중화권 언론의 명명으로 시작된 것처럼, 문화가 ‘수용’의 과정을 거쳐 자국 내에서 의미화되는 전형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 사회가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가치를 확인하려는 경향, 즉 ‘문화적 자기 확인’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경향은 자국 문화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외부의 찬사를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세계적인 문화 심리학적 현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과거 한국 근현대사의 자학 사관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 것’에 대한 낮은 자존감은, 외부의 거울을 통해 자국 자산을 재해석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의 지속가능성은 외연의 확장뿐 아니라, 순환과 회귀를 통한 정체성의 재구성에 달려 있다. 문화 역수입은 이러한 순환의 중요한 국면이며, 미래의 문화는 이러한 회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생명력을 얻는다. 되돌아온 문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히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MBC 교양 PD 출신으로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K-콘텐츠와 한류 정책을 연구하며 ‘공감 한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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