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재정 운영과 포용적 성장을 위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정부의 세제 정책 방향 또한 이러한 거시적인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5년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실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세수 감소 국면을 타개하고 국민 세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정부의 복합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상당한 재정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세수입은 2년 연속 감소하여 2022년 400조 원에서 2024년 336조 원으로 64조 원이라는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동시에 조세감면액은 2019년 49조 6000억 원에서 2024년 71조 4000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재정적 압박은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증가 전망과 맞물려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65년에는 GDP 대비 복지지출이 26.9%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7.6%(2024년)로 OECD 평균 25.0%보다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응능부담’의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개편안을 마련했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는 법인세율을 2022년 수준으로 환원하는 조치다. 구체적으로 법인세율은 9%→10%, 19%→20%, 21%→22%, 24%→25%로 인상된다. 이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 확보 노력과 함께, 국제적으로도 여전히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의 조정이다. 개편 후에도 한국의 법인세율은 OECD 평균 21.8%보다 높지 않으며, 독일(29.9%)이나 일본(29.7%) 등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더불어 증권거래세율 또한 2023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코스피는 0%에서 0.05%, 코스닥은 0.15%에서 0.20%로 조정된다. 이는 과거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에 따라 일시적으로 낮췄던 거래세를 정상화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국민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다자녀 가구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가 자녀 수에 따라 확대되어, 총급여 7000만 원 이하 근로자는 자녀 1인당 50만 원씩 최대 100만 원을, 7000만 원 초과자는 자녀 1인당 25만 원씩 최대 50만 원까지 추가 공제받을 수 있다. 보육수당 비과세 또한 월 20만 원에서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으로 확대되어 실질적인 가계 부담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비 부담 완화 역시 중요한 변화다. 초등학교 1~2학년 자녀의 예체능 학원비가 교육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대학생 교육비 공제에서 소득요건이 폐지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다. 주거비 지원 강화 측면에서는 월세 세액공제가 부부 각각 받을 수 있도록 확대되었고, 3자녀 이상 가구의 경우 월세 공제 대상 주택 규모가 85㎡에서 100㎡로 늘어났다. 또한, 연금소득자의 종신연금 원천징수세율이 4%에서 3%로 인하되고, 임목 벌채·양도소득 비과세 한도가 6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대폭 확대되는 등 다양한 계층의 세금 부담을 경감하는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단순한 세수 확보를 넘어 미래 경쟁력 강화에도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AI 분야 국가전략기술을 신설하고, 웹툰 콘텐츠 제작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중견기업 10%, 중소기업 15%로 새로 도입했다. 영상콘텐츠 세액공제 기본공제율도 상향 조정되었으며, 문화산업전문회사 출자 세액공제 대상도 확대되는 등 K-문화 산업의 글로벌 확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방 균형 발전 측면에서는 고향사랑기부금 세액공제가 10만 원 초과 20만 원 이하 구간에서 15%에서 40%로 대폭 확대되고,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기간이 12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나는 등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담겨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세부담의 공정성 강화다. 고배당기업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가 도입되어 소득 구간별로 14%, 20%, 35%의 세율이 적용되며,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과세기준 또한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낮춰 과세 형평성을 높였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전체 세수효과는 8조 167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서민·중산층에게는 1024억 원의 세부담 경감 효과가 있는 반면, 대기업에게는 4조 1676억 원, 고소득자에게는 684억 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부담이 소득 수준에 비례하는 응능부담 원칙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재정 운영과 포용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번 2025 세제개편안은 32개 단체·기관의 약 1360건의 개정 건의와 28건의 조세특례심층평가를 거쳐 마련되었다. 이는 세제가 단순한 세금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정책 도구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완성도를 높여나가기를 기대한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우석진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석사 및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8년부터 명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 노동경제학, 복지정책평가, 조세정책,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 등이며,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 분석을 수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