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 진입 속에서 은퇴 후 경제적 안정만큼이나 부부 간의 화목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상 은퇴는 개인의 삶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부 관계의 변화는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은퇴 후 남편과 아내의 관계 재정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은퇴 후 발생하는 부부 갈등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해결 방안 모색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최근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의 기고는 이러한 문제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제시하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강 대표는 퇴직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수기 공모 심사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절벽 위에 선 기분’을 느낀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은퇴 후 일상을 잃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는 남편들의 심리는 부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한 고위직 공무원의 사례는 이러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은퇴 후 3개월간의 무의미한 여가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아내의 눈치가 불편해 결국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일하게 된 그는 월 70만 원의 수입과 건강보험료 30만 원을 벌어 집에 기여하면서 ‘무섭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기여뿐만 아니라, 외부 활동을 통해 얻는 자존감과 역할 회복이 부부 관계 개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시사한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20년 이상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 혹은 ‘부원병(夫源病)’이라 불리는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는 남편의 퇴직 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내가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건강 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우울증, 고혈압, 공황장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증상은 부부 간의 관계 단절, 나아가 중년·황혼이혼으로까지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1990년 14%였던 일본의 중년·황혼이혼 비율은 2023년 23%로 증가했으며, 이는 과거 성격차이나 외도 등 전통적인 이혼 사유 외에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새로운 이혼 사유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시점이다. 지난 이십수 년간 전반적인 이혼율은 낮아졌으나, 전체 이혼 건수에서 중년·황혼이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36%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중년·황혼이혼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역 시절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던 부부가 퇴직 후 갑자기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생활 습관, 성격 차이 등 사소한 부분들이 갈등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 부부의 화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낮 동안에는 부부 각자가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혹은 이 세 가지를 겸한 활동이든 자기만의 시간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노후설계 전문가 오가와유리 씨는 퇴직 후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까지 언급할 정도로, 부부 각자의 독립적인 생활 공간과 시간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경제적 준비 못지않게 부부 관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적인 노후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보여준다. 결국, 고령화 사회에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은퇴 후 급변하는 부부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제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수 있는 다양한 설계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