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고 혁신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AI의 지능 수준은 학습 데이터의 양과 질에 크게 좌우된다. 파편화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조직과 체계적인 맥락 정보까지 공유하는 조직 간의 AI 활용 능력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앞선 협업 방식은 국내 기업들이 AI 시대를 맞이하여 데이터 관리 및 공유 시스템을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AI의 성능이 ‘데이터’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충분한 데이터 확보 없이는 AI가 과적합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데이터 관리 실태를 ‘D 드라이브’에 저장된 정보에 비유하며, 이러한 파편화된 데이터는 포맷과 함께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이는 곧 공무원들이 장차 활용해야 할 AI의 발전 가능성마저 소실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6 페이저(6 Pager)’라는 독특한 회의 문화를 통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유한다. 아마존과 같은 기업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6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작성하여 회사와 공유하며, 회의 참석자 전원이 이 메모를 읽는 데 30분이라는 시간을 할애한다. 이 메모는 도입부, 목표, 원칙, 사업 현황, 교훈, 전략적 우선순위 등을 포함하며, 명확한 서술 구조를 통해 사고의 깊이를 더한다. 이러한 방식은 불필요한 정보의 축소를 강제하고 핵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파워포인트(PPT) 사용을 금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PPT의 글머리 기호(bullet point) 뒤에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쉽다는 제프 베이조스의 지적에서 잘 나타난다. 완전한 문장으로 서술된 보고서는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어렵게 만들고, 더 나은 사고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 구조는 AI 학습에도 훨씬 유리하며, 맥락 공유를 통한 협업을 촉진한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협업 시스템은 클라우드 기반의 위키 엔진을 활용한 게시판을 기본으로 하며, 재무 및 인사 부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서에서 게시판을 공개로 설정한다. 이는 모든 참가자가 논의 과정과 자료를 공유하며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구글의 개발자가 입사 첫날부터 핵심 자산인 검색 엔진의 소스코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투명한 정보 공유는 조직 전체의 지식 수준을 향상시킨다.
결론적으로, 박태웅 의장은 ‘6 페이저’와 같은 상세한 서술형 보고서 작성을 통해 ‘맥락’을 공유하는 것이 1페이지 요약에 집중하는 것보다 장기적인 총소유비용(TCO)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1페이지 보고서를 ‘잉크값이 다락같이 비싼 싸구려 잉크젯’에 비유하며, 중요한 보고일수록 서술체 작성을 통해 AI 학습을 촉진하고 맥락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훨씬 더 뛰어난 AI를 활용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파편화를 막고 체계적인 맥락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시스템 혁신은 국내 기업들이 AI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산업 전반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