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적인 도시 공간 조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개별 거주자의 실제 경험과 불편함을 정책 수립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고령층을 위한 정책이 실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통계적 수치에 기반한 정책 설계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 커뮤니티 정책연구센터가 발간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 보고서는 이러한 ‘체감형 정책’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원에 설치된 지자체의 깔끔한 평상이나 벤치는 등받이가 없고 딱딱하여 장시간 앉아 있기에 불편하며, 여름철에는 뜨겁고 겨울철에는 차가워 어르신들이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낡고 고장 났더라도 등받이와 쿠션이 있는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의자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보여주기식 공간 설계가 아닌 실제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히 ‘앉을 곳이 있다’는 사실 확인을 넘어 ‘어떻게 앉는 것이 편안한가’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르신들의 삶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가 존재한다. 이 조사들은 각각 3년마다 65세 이상 어르신 1만여 명의 건강, 기능 상태, 돌봄 실태, 거주 주택의 종류와 편리성 등을 조사하며, 매년 전국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 관련 다양한 통계를 수집한다. 이러한 조사들은 ‘집에 방이 몇 개인지’, ‘몇 년 거주했는지’와 같은 객관적 사실 확인에 집중하며, 국가 승인 통계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예를 들어 ‘집 현관 이용 시 무엇이 불편한지’ 또는 ‘공원 시설물 이용 시 어떤 점이 불편한지’ 등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활 환경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직접 듣는 조사가 병행될 때, 비로소 국민 체감도를 높이는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 보고서는 이러한 경험 체크식 조사의 실효성을 입증한다. 보고서는 어르신들이 화장실 이용 시 높은 욕조 높이로 인해 불편함과 위험을 느낀다는 점을 지적하며, 적정 높이와 충분한 너비의 욕조, 편안한 변기, 미끄럼 방지 바닥재 및 안전 손잡이 설치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또한, 외부 활동 시에는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으로 인한 낙상 경험과 짧은 보행 신호로 인해 서둘러 길을 건너다 발생하는 사고 등을 지적하며, 어르신 친화적인 보행 환경 조성과 보행 신호 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현장 기반의 세심한 정책 제안은 현재 수립 중인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고령화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준비하고 시행 중이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 국민의 일상 경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은 이러한 어르신들과 지역 주민들의 하루 삶이 비추어 내는 실태와 경험이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어 국민 체감적 정책이 수립되기를 강력히 소망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모든 세대가 존중받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