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패권 경쟁 심화라는 거시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과거의 자유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각국의 경제 안보를 위한 블록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이번 협상 결과는 한국이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미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 안보 구상 속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 그리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시급함을 시사한다.

이번 한미 무역협상 타결은 여러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지만, 특히 미국의 경제 동맹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이번 합의를 ‘전지적 트럼프 시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국이 자국의 경제 안보를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EU 등 핵심 동맹국들을 ‘15% 클럽’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의 ‘중국 거대포위 구상’ 실현을 위한 핵심 국가로 분류되었으며, 이는 한국의 경제 외교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열었음을 의미한다.

국내 시장 보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경쟁국에 비해 추가 개방의 이점이 크지 않았던 국내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은 점은 다행스러운 결과로 평가된다. 또한, 미국에 절실했던 조선 협력을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일본, EU 등 핵심 동맹 제조국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상호관세 15%, 자동차 품목관세 15%)를 확보한 것은 이번 협상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 과정에서 전략적 카드를 성공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미 FTA 체제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관세 15%가 부과됨으로써, 기존의 한미 경제협력 템플릿이 일부 무너졌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또한, 이번 합의가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망록 형태로 이루어져 향후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를 최소화하고, 합의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이 시급하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15% 클럽’ 가입은 향후 대중 제조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이에 따른 미국발 안보 비용 분담 압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은 핵심 제조업의 대미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AI, ICT, 그린 기술 등 미래 산업과의 접목을 통해 국내 제조혁신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수출 시장 다각화와 더불어 내수 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포용적 자유무역 질서 복원을 위한 노력과 함께, 예측 불가능한 한미 관계에 대한 원칙 있는 대응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이러한 중장기 전략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