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는 K-콘텐츠의 눈부신 약진을 목도하며 ‘한류’라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회성 유행을 넘어, 글로벌 문화 지형에 깊숙이 자리 잡은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발돋움했음을 시사한다.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정길화 교수는 김춘수의 ‘꽃’,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김용락의 ‘BTS에게’, 그리고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이라는 네 편의 시를 통해 한류의 정의, 생성, 공감, 그리고 지속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포괄하며 그 위상을 재조명한다. 이는 ‘문화적 주체’로서 한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며, 관련 업계와 정책 결정자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류의 시작은 ‘정의(定義)의 순간’과 궤를 같이한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구절처럼, 한류 역시 세계가 ‘한류(Hallyu)’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인식하기 전까지는 그저 하나의 ‘현상’ 혹은 ‘몸짓’에 불과했다. 1990년대 후반 중화권 매체에서 ‘한류’라는 명칭이 등장하면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는 일과성의 유행을 넘어 ‘문화적 주체’로서의 실체를 얻게 되었다. 즉, 세계가 이름을 짓고 불러주는 과정을 통해 한류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닌, 세계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수동적인 소비가 아닌,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수용’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불리는 이름’은 곧 관계의 출발이며, 한류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문화적 주체’로서의 한류는 ‘생성의 시간’을 거쳐 피어났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표현처럼, 오늘날의 한류는 일제 강점기, 분단, 한국전쟁, 절대빈곤, 산업화, 민주화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와 인고의 세월 속에서 응축된 문화적 승화의 결과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 상품이 아닌, 한국 사회가 겪어온 모든 시련과 성공, 그리고 회복의 과정이 빚어낸 ‘기억의 꽃’이다. ‘국화 옆에서’가 보여주는 연기(緣起) 사상처럼, 한류 역시 단절된 흐름이 아닌 연속된 역사 속에서 존재하며, 이는 한국의 시간과 기억이 맺은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기억의 꽃’은 한국 사회 내부의 치유를 넘어 세계를 향한 몸짓으로 확장되며 그 의미를 더한다.
나아가 한류는 ‘공감의 울림’을 통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김용락 시인의 ‘BTS에게’에서 “LOVE MYSELF, LOVE YOURSELF!/(…)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비로소 가슴이 뛰고 인간이 된다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K-콘텐츠, 특히 BTS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BTS는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언어를 초월한 감정의 번역자이자 시대의 시인으로서 진심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 이전에 ‘진정성’이 기반이 된 콘텐츠가 ‘다른 언어로도 마음속을 두드리는’ 힘을 발휘함을 증명한다.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공감의 공동체이자 문화의 공동 창작자로서, K-콘텐츠가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는 핵심 비결을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한류는 ‘지속의 여정’에 서 있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와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는 메시지처럼, 한류 역시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발전하고 나아가야 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에 자만하거나 안주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놓치는 길이다. 한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은 단순한 외연 확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가치, 다문화적 포용, 그리고 인간성 회복에 있다. K-콘텐츠는 세계를 향해 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안의 진실 또한 담아내며, 외연과 내면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때 ‘진정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창·제작자에게는 영감과 상상력을, 플랫폼과 유통 업계에는 새로운 전략과 방법론을, 연구자에게는 전망과 통찰을, 정책 담당자에게는 기획과 비전을, 그리고 수용자에게는 향수와 감동을 선사하는 ‘지속 가능한 한류’로 이어질 것이다. 한류는 오늘도 만들어지고 전파되고 수용되고 있으며,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