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성장기 이후 한국 경제는 심각한 내수 취약성과 소득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90년대 초 이후 소득 분배 악화와 가계 소비의 위축은 한국 경제를 수출 시장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세계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심화시켰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27년간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 증가율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으며, 이를 메우기 위한 가계부채 증가는 소비와 성장 둔화의 악순환을 가속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이상 가계부채를 통한 부동산 재테크에 나서기 어려워졌고, 건설 투자 침체와 가계 소비의 구조적 취약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배포와 같은 정책은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늪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일회성 소비쿠폰의 한계를 넘어,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을 지원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이는 ‘사회임금’ 혹은 ‘사회소득’의 개념과 연결된다. 사회는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생산의 결과를 배분할 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배분하는 사회몫을 떼어내야 한다. 이 사회몫이 바로 사회소득이며, 그 수준과 지급 방식은 정치와 민주주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사회지출 규모는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24년 기준 OECD 평균 사회지출 규모(GDP 대비)가 21.229%인 반면, 우리나라는 15.326%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국민 1인당 약 300만 원, 4인 가족 기준 연간 12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OECD 평균보다 적게 지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 소득의 절대적 과소는 시장 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과 불평등한 분배를 야기하며,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계층이 발생하는 ‘을’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배경이 된다.
가장 효과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불공정한 조세 체계의 수술이다. 한국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은 OECD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낮으며, 이는 다양한 공제 혜택으로 인해 소득이 높은 계층에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110조 원의 소득 중 약 410조 원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101조 원의 세금이 감면되었으며,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하위 30%는 421만 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세금 공제액은 11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공제 방식을 폐지하고 확보한 세금을 인적공제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할 경우,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 지급이 가능하다. 이는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90% 이상의 국민에게 순혜택을 제공하며, 소득이 낮을수록 순혜택이 증가하여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이처럼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개혁하여 마련된 정기적 사회소득 재원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 소득 강화는 기본사회의 한 축인 기본금융 도입과 결합될 경우,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AI 대전환에 따른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위축된 내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산업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튼튼한 초석을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