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2050년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 되고, 207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울트라 고령사회’ 진입이 예고된 상황에서, 연금 재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용할 것인가는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 세대 간 정의와 제도의 존속을 위한 핵심적 관건이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18년 만에 마침내 일단락된 국민연금 개혁은 이러한 지속가능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다.

이번 개혁은 단순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수준을 넘어, 제도설계 이후 27년간 동결되었던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며 연금 재정 운영 방식을 ‘준적립방식(partially funded)’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전통적인 부과방식(pay-as-you-go) 연금이 현재 세대의 보험료로 은퇴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구조여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적립방식(funded)은 세대 내부에서 부담과 급여를 조정하며 고령화 충격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현재 1,200조 원 이상의 적립기금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인상하는 모수개혁안으로, 국민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부담을 높이는 동시에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수준 강화한 정치적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이로 인해 당장 수년간은 적립기금을 헐어 쓰지 않고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되어, 기금 운용 수익이 재정의 한 축으로 온전히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금 운용 수익이 훼손될 수 있었던 위기 국면에서 ‘급한 불’을 끄고,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다. 특히, 국민연금법 제3조의 2 개정을 통해 국가의 연금지급 책임을 명문화하고, 출산크레딧 및 군복무크레딧을 확대하며,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을 강화하는 등 청년 세대의 불안을 해소하고 제도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번 개혁이 기금고갈 시점을 8~15년 연장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완전한 개혁이라는 한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완결’이 아닌, 지속가능한 연금을 향한 로드맵의 ‘출발점’임을 명확히 하는 지점이다.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보험료율 15% 인상, 수급연령 2048년까지 68세 상향, 기금운용수익률 5.5% 유지 시 70년간 기금 고갈 없이 지속 가능한 연금 모델이 가능하며, 소득대체율 43% 기준에서도 보험료율을 16.5%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수지균형보험료율보다 낮은 수준에서 준적립방식 운영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이번 국민연금 개혁은 단순한 4%포인트의 보험료 인상을 넘어, 기금이 고갈되기 전 구조개혁을 준비할 수 있는 전략적 시점에 이루어진 역사적 전환이었다. 이는 한국이 연금 위기 시계가 본격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 중 하나임을 보여주며,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의 첫걸음을 디뎠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수개혁을 넘어 구조개혁 논의를 본격화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향후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연령 상향,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과 함께, 기초연금 재편, 적용 포괄성 및 가입 기간 확대, 퇴직연금 내실화 등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비 방향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연금은 세대 간 신뢰를 지키고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로서, 이번 개혁은 그 원칙을 유지하며 미래를 향한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제는 준적립방식과 기본 보장의 방향을 따라, 우리 모두가 연금을 다시 성숙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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