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과 산업 발전은 고유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생태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없이는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경제’라는 핵심 키워드로 대선에서 승리했듯, 오늘날 우리 사회와 산업 전반에서 ‘생태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생태계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가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물어지는 원도심이나 고립된 혁신도시, 그리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 현장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생태계가 번성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은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종 다양성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 서로 얽혀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 품종 감자에만 의존하다가 감자역병으로 인해 100만 명이 굶어 죽은, 종 다양성이 깨진 생태계의 비극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이와 더불어, 태양에너지를 시작으로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어지는 에너지와 물질의 끊임없는 순환은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이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곰팡이, 버섯, 세균이 이를 분해하고 토양으로 되돌리는 과정처럼, 순환이야말로 생태계의 본질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를 통한 개방성과 연결성은 폐쇄된 생태계가 겪을 수 있는 유전적 고립과 취약성을 극복하고 생존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례는 닫힌 환경의 필연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간과한 정책은 지방 도시의 원도심 공동화와 혁신도시의 고립을 초래하고 있다. 지방 도시를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허허벌판에 혁신도시를 조성했지만, 배우자의 일자리가 부족한 젊은 부부들이 이주하지 못하는 현실은 이러한 정책이 생태계의 기본적인 연결성을 고려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신도심에 아파트만 무분별하게 건설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원도심의 공동화를 야기하며, 도시 전체의 생태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 창원과 부산의 사례처럼 직선거리 50km 이내임에도 불구하고 500km처럼 느껴지는 마음의 거리는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통근 전철’과 같은 연결성을 간과한 정책 실패의 증거다. 타당성 검토에서 늘 난항을 겪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태계적 관점의 부재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 역시 이러한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파운드리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복합적인 생태계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긴밀한 생태계 속에서 운영된다. 전문 칩 설계 회사가 만든 설계도를 파운드리의 공정에 맞게 다듬는 디자인 스튜디오, 재사용 가능한 IP(Intellectual Property) 기업의 역할, 그리고 칩을 굽고 나서 패키징과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첨단 기술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수나 패키징 기술 등 여러 단계에서 TSMC의 생태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으며, 이는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전환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다. 애초에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으며, 파운드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체 생태계를 번성시키는 노력이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이치는 대부분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 생태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고려 없이 추진되는 모든 정책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태계적 통찰력의 부재는 원도심의 고립과 혁신도시의 ‘독수공방’을 낳았으며, 나아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당시의 상황을 묻는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