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 각본상, 음악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까지 6관왕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 최고 수준의 권위를 자랑하는 무대 예술계에서도 경쟁력을 갖추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러한 성공은 한국 대중문화의 오랜 역사와 발전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류’ 현상과의 연결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류의 시작점을 두고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기원으로 꼽히는 것은 1997년 6월 15일 중국 CCTV에서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1991년 11월부터 1992년 5월까지 방영된 55부작 주말 드라마로, 당시 최고 시청률 64.9%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에서 시청률 4.2%, 평균 시청자 수 1억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중국 내 한류 열풍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는 한국 드라마가 한국 방영 당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사랑이 뭐길래> 이전에도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 소개된 사례는 있었다. 1993년 방영된 드라마 <질투>(중국명 ‘녹색연정’)가 한류의 원년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1994년 영화 <쥬라기 공원>의 인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또한 1995년에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출범, CJ ENM의 영상 산업 진출,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등 한류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더불어 1999년 11월 19일 중국 언론이 한국 드라마와 K팝 등의 인기를 ‘한류’라고 명명한 시점을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여러 논의 속에서도 <사랑이 뭐길래>는 화제성, 상징성, 영향력 측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용어가 나오기 이전에 실행으로서의 한류, 현상으로서의 한류가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된 1997년을 한류의 원년으로 볼 경우, 올해로 한류의 역사는 28년이 된다. 비록 한 세대에 해당하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특히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한류는 이후 영상 콘텐츠와 K팝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을 거쳐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K팝 역시 BTS, 블랙핑크 등을 필두로 글로벌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의 ‘한한령’과 같은 정치적, 외교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오히려 문화 콘텐츠 현장에서의 창·제작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더욱 견고하게 성장해 왔다.
이번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은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을 일컫는 EGOT의 위업을 한국 작품이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서울 대학로에서 시작된 뮤지컬이 세계 최고 권위의 무대에 서서 영광을 안은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했던 28년 전 <사랑이 뭐길래>의 사례와 맥을 같이 한다. 이는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들에게도 큰 영감을 줄 것이며, 한국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 나아갈 글로벌 경쟁력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