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문화창고가 로컬100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과거 포경 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제 사라진 산업과 생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현대사회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중공업 중심지로서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울산의 역사를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은, 산업화의 이면에 존재했던 환경 문제와 그 극복 과정을 성찰하게 하며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장생포는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서식하기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며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등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부유물과 플랑크톤은 새우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고, 이는 먹이를 찾아온 고래들에게 최적의 서식 환경을 제공했다. 특히 ‘귀신고래’로 알려진 고래들이 자주 출몰하며 장생포는 번성하는 포경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된 이래, 장생포는 수출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들로 가득 차고 6~7층 규모의 냉동창고가 즐비할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1973년 남양냉동, 1993년 세창냉동과 같은 대규모 냉동 시설은 당시 장생포의 산업적 위상을 방증했다. 그러나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 포경 전면 금지 결정으로 장생포의 고래 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10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은 냉동창고들은 폐허로 남겨졌다.
이러한 폐허가 된 냉동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의 매입을 시작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개관한 장생포문화창고는 총 6층 규모의 복합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 등을 갖춰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특별 전시관,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을 통해 다채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에어장생’ 체험 프로그램부터 조선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미디어 아트 전시, 그리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까지, 세대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는 이곳을 매력적인 복합 예술 공간으로 만든다. 특히, 수십 년 된 냉동창고의 문을 그대로 활용하여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은 업사이클링의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창고 2층에 마련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장생포문화창고의 핵심적인 전시 공간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울산석유화학단지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중화학공업의 발전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다. 정유,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선도했던 울산의 역사는 부모 세대에게는 깊은 애잔함을, 젊은 세대에게는 산업화 시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 발전의 이면에는 ‘온산병’과 같은 환경 문제도 존재했다. 1980년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집중된 제련소와 석유화학공장에서 배출된 중금속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했으며, 이는 산업 발전과 환경 보존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상주하는 해설사의 흥미로운 설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며,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는 미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록 상업 포경은 금지되었지만, 장생포에는 여전히 ‘고래고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는 고래요릿집들은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 덕분에 고래고기를 더욱 특별한 미식 경험으로 만든다. ‘일두백미(한 마리에서 나는 12가지 이상의 맛)’라고 불리는 고래고기는 살코기, 껍질, 혀, 창자, 염통 등 부위별로 다양한 맛과 식감을 자랑한다. 붉은 빛깔의 살코기는 쇠고기보다 진한 색을 띠며, 달콤한 설탕과 참기름에 무쳐낸 고래 육회는 소고기와 흡사한 맛을 낸다. 특히, 턱 아래 부위의 ‘우네’나 배 쪽 지방층과 살코기가 겹겹이 붙은 ‘오배기’와 같은 고급 부위는 고래 특유의 풍미를 극대화시킨다. 과거 비린 음식에 대한 기억으로 고래고기를 꺼렸던 부모님조차도 이곳의 신선하고 다채로운 고래 요리에 만족감을 표할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한 식사 장소를 넘어선다. 이곳은 사라진 산업과 생업, 그리고 포경선의 향수를 담은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깃든 공간이다. 고래고기 한 점에는 과거 포경선에서 꿈을 꾸었던 어부들의 삶, 6.25 전쟁 피난민들의 단백질 보충,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과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다. 장생포문화창고와 고래요릿집들은 과거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시켜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산업화와 그 이면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회적, 환경적 함의를 되새기게 하는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