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ESG 경영’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부상하면서, 과거의 유산과 지역의 문화를 현대적인 흐름 속에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천 강화군이 ‘로컬100’에 선정된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는 단순히 지역 명소를 넘어, 한국 섬유 산업의 역사적 맥락과 지역민들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과거 폐허가 되었을 법한 옛 공장 터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나아가 전통 산업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강화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막아낸 호국의 섬이자,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다채로운 먹거리를 자랑하는 식도락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해발 472.1m의 마니산 정상에 위치한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천제를 올렸던 민족의 성지로, 개천절 제례와 전국체전 성화 채화 장소로 사용되는 등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강화의 매력은 비단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 시대부터 최고의 특산물이었던 화문석의 전통을 잇는 뛰어난 왕골 공예 기술과 더불어, 고려 시대부터 해외 수출까지 했던 강화 직물의 역사는 강화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1933년 강화 최초의 인견 공장인 ‘조양방직’ 설립 이후 1970년대까지 60개가 넘는 방직공장이 성행했던 강화는 한국 섬유 산업 발전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현재까지도 6개의 소창 공장이 옛 방식 그대로 소창을 직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는 바로 이러한 강화직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폐 소창공장 ‘동광직물’을 생활문화센터로 개관하고, 1938년에 건축된 ‘평화직물’ 터를 리모델링하여 ‘소창체험관’으로 운영하는 것은, 잊혀져가는 산업 유산을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킨 의미 있는 시도이다.
소창은 목화솜 실로 짠 천으로, 옷, 행주, 기저귀 등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전통 직물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면화를 수입하여 생산했던 소창은 도시화와 산업화 이전, 대구와 더불어 강화가 3대 직물 도시로 불릴 만큼 중요한 산업 생산품이었다. 당시 강화읍 권역에만 60여 개 공장이 운영되고 4,000여 명의 직공이 근무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2시간 주야간 교대로 먼지 속에서 근무했던 어린 직공들의 이야기는 당시 섬유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 노동 집약적 산업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소창 제작 과정은 원사 가공부터 풀 먹이기, 건조, 베틀 작업까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그 정성과 노동 집약적인 과정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생산된 방직물을 강화 여성들이 직접 전국을 다니며 판매했던 ‘방판’ 문화이다. 중간 상인 없이 직접 판매함으로써 마진을 높였고, 심지어 북한 개풍까지 건너가 판매했다고 한다. 이때 강화 여성들이 앞치마에 싸갔던 새우젓은 척박한 환경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이들에게 귀한 양식이자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전국 새우젓 물량의 70~80%를 담당하는 강화 새우젓은 넓은 갯벌과 한강, 임진강이 합쳐지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월등한 맛을 자랑한다. 이러한 새우젓은 강화의 향토 음식인 ‘젓국갈비’의 핵심 재료가 되며, 인공감미료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미미한 감칠맛으로 음식의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애호박의 단맛, 배추의 구수한 맛과 어우러지는 젓새우의 짭짤하면서도 담백한 맛은 ‘대미필담(大味必淡)’, 즉 맛있는 음식은 담백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과거의 직물 제작 방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지역민들의 삶의 애환과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억척스러운 강화 여성들이 쉰밥, 찬밥에 요긴했을 새우젓을 품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졌을 소창 기저귀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은 우리네 인생의 애잔함과 짠맛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 두 공간은 강화의 섬유 산업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중요한 문화 거점으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뿌리를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들에게도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현대적인 가치로 재창출하고 지역 사회와 연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