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패권 경쟁 심화와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국과 일본 간의 전략적 협력 강화 움직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17년 만에 발표된 정상 간 합의문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향후 양국 관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국가 간의 관계를 넘어, 더 큰 지정학적 역학 관계 속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글로벌 전략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지난 8월 23일, 역사적인 한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도쿄에서 개최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 정상회담은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는 미국의 태도를 감안할 때, 한국이 일본과의 협력 체제를 선제적으로 구축한 것은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흐름은 8월 25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입증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방문 성과 설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며 한일 협력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토대임을 시사하는 언급을 했다. 이는 ‘트럼프 2.0’ 시대로의 전환 가능성 속에서 한일 간의 대화와 협력이 전략적으로 필수 과제가 되었음을 방증한다.
한국과 일본은 대미 관계뿐만 아니라 관세, 통상, 군사, 안보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인식을 공유하는 ‘동병상련’의 파트너 관계에 있다. 특히 미·중 간의 패권 경쟁 구도 속에 놓여 있는 양국은 안보와 경제 면에서 전략적인 이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부분이 매우 크다. 이번 한일 정상 간 대화에서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좌 경험을 이 대통령과 공유하고 대미 협상의 지혜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점은 이러한 전략적 공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정상회담 방문국으로 일본을 선택하고, 위안부 합의와 징용합의 등 과거 국가 간 약속 이행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일본 내 잔존했던 반일·친중 성향에 대한 의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대일 실용 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에 양자 관계 자체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60년간의 한일 관계를 성찰하고 글로벌 질서 변환에 걸맞은 대일 관계 설정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이번 방일은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17년 만에 발표된 정상 간 합의문은 향후 한일 관계의 새로운 밑그림을 선보였다. 이는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선언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잇는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으로 평가된다. 합의 내용은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을 포함한 대화 채널 활성화 ▲워킹홀리데이 확대 등 젊은 세대 교류 촉진 ▲사회·경제 정책 분야 협력 틀 수립 ▲북한·안보 문제 공조 ▲국제 무대에서의 긴밀한 협력 추구 등을 포함한다.
더욱이 현재 혼돈과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일본 정국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담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이시바 총리는 역사 문제에 있어 긍정적인 견해를 지닌 인물로 평가되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역사 인식 문제에 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상생 협력의 청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번 회담은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 정상 간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개선된 한일 관계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잦은 지정학적 위기와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공통의 고민을 안고 있는 한일이 전략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선택이며, 이번 정상 간 만남은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 외교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