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이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인재’ 확보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의 역량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AI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은 단순히 기술력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인재 양성과 공급이 필수적인 전제 조건임을 시사한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쉬었음’ 청년이 2003년 대비 20만 명 이상 증가한 40만 명대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는 학업이나 취업 준비, 육아·가사 등 구체적인 사유 없이 노동 시장에서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청년 세대의 나약함을 탓하기도 하지만, ‘쉬었음’ 청년 대다수는 최저시급 이하의 낮은 급여, 열악한 업무 환경,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견디지 못해 노동 시장을 떠난 경험 있는 노동력이다. 이들이 희망하는 ‘상식적’ 일자리, 즉 연봉 2823만 원, 통근 시간 63분 이내, 추가 근무 주 3.14회 이내, 정규직 전환 기회가 있는 계약직, 개인 성장과 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은 현재 우리 사회가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 증가와 청년 일자리 감소라는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1991년 8.3배에 달했던 청년 일자리 대 65세 이상 일자리 비율은 올해 0.8배까지 감소했으며, 지난해부터는 고령층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했다.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한국의 청년 일자리 부족 현상은 두드러진다. OECD 국가들은 고령층 일자리 증가 추세 속에서도 청년 일자리를 꾸준히 늘리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 구조의 문제와 직결된다.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의 근본 원인은 신산업의 부재에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은 1991년 전체 일자리의 약 27%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15%로 감소하며 탈공업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제조업이 미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 중 생산 부문에만 특화되어 설계나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 부문에서 선진국에 의존하는 ‘자기완결성 결여’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는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으며, 이는 소득 불평등 심화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귀결되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고령화로 이어지며 자영업자의 고령화 가속화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동시에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25~34세 핵심 노동력 규모가 외환위기 직전 대비 70만 명 이상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보여주며, 고령층은 레드오션인 자영업이나 정부 지원 일자리에, 청년들은 일거리를 잃어가는 현실을 야기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기술 혁명들은 산업 체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인터넷 및 IT 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생태계’의 개막, 플랫폼 사업 모델과 모바일 혁명, 그리고 데이터 혁명과 AI 혁명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한국은 IT 강국, 신성장 동력 육성 등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는 점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혁신 노력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에 사활을 거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의 산업 정책에 대한 철저한 자기 비판이 요구된다. ‘한강의 기적’이 미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의 일부를 수용한 ‘식민지형 산업화’였다면, AI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은 선진국형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디지털 생태계의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하며, 획일주의와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만을 배출하는 교육 시스템은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한국이 미국처럼 플랫폼 사업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와도 연결된다. ‘위계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은 ‘분산, 이익 공유,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 모델의 문화와는 이질적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 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진화하지 못했고, 이는 한국이 ‘데이터 혁명’ 및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대표 기업조차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마저 AI 대전환 과정에서 적응에 실패하며 2류 기업으로 전락하는 현실은 이러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AI 기반 산업 체계의 대전환 시대에는 인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AI 모델을 활용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3대 강국’은 인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과 ‘쉬었음’ 청년 대상 생활비 지원을 ‘AI 전사 육성’이라는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불가피하다. ‘AI 전사’는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모노칼라 인재를 배출하는 현행 교육 시스템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사회 혁신 덕분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이는 성공적인 AI 대전환이 어렵다는 사실은, AI 인프라와 모델에서 2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20%에 가까운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는 중국의 상황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AI 전사’들에 의한 새로운 시도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나아가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를 보장하기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 사회 소득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사회 소득의 제도화는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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