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노력이 가속화되면서, 원자력이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2020년 타임지가 ‘마지막 기회’라는 경고와 함께 모든 수단 동원을 촉구한 이후, 2022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친환경에너지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뉴욕타임즈는 ‘원전 르네상스’ 도래를 예고했으며, 이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동향의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유럽 그린딜에서 원전을 배제했던 유럽연합이 2년 만에 이를 포함시킨 것은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유럽은 탄소중립에 대한 높은 의지를 바탕으로 원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영국은 풍부한 풍력 자원을 활용하면서도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산업 기반 확보에 나서고 있다. 스웨덴은 205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스위스 역시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국민투표를 추진 중이다. 탈원전 기조를 보였던 이탈리아마저도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검토하는 등, 유럽 전역에서 원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스웨덴 10기, 네덜란드 4기, 폴란드 6기, 체코 4기 등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글로벌 원전 시장의 확산 속에서, 체코의 신규 원전 사업은 단순 정부 간 협약을 넘어 입찰 경쟁을 통해 진행된 첫 사례로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15년 전 UAE 원전 수주에 이은 이번 체코에서의 승리는 한국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해외에서의 성공적인 경쟁력 확보는 국내 원전 기술의 발전과 산업 생태계의 유지 덕분이다.
지난 10월 30일 준공식을 가진 신한울 1,2호기는 우리나라 원전 산업 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기술 자립이 미흡했던 원자로 펌프, 제어 시스템 등을 모두 국산 기술로 대체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또한, 착공에 들어간 신한울 3,4호기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원전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2022년 정부의 발 빠른 정책 전환은 이러한 원전 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물꼬를 텄다. 1972년 고리 1호기 도입 이래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2년에 1기씩 건설해 온 산업 생태계의 경험은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다. 2000년대에도 국내 12기, 해외 4기의 원전을 건설하며 축적한 공급망, 설계, 제작, 건설 기술은 한국이 세계적인 원전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기반이 되었다. 만약 탈원전 정책이 장기화되었다면 자칫 잃을 뻔했던 이러한 산업 기반을 신한울 1,2호기 준공과 신한울 3,4호기 착공을 통해 회복하고 강화하게 된 것이다.
향후 한국 원전은 네덜란드 등 유럽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며, 이는 세계 원전 시장 확대라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내부적인 위협 요인 또한 내포하고 있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은 한국, 미국, 프랑스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에 놓여 있으며, 이번 체코 수주 성공이 다음 경쟁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연마와 ‘팀 코리아’의 결속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가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시점에 체코 원전 사업을 둘러싼 국내 논란은 외부 역량 집중을 저해할 수 있다. K-원전은 우리 청년 세대에게 자부심을 제공할 수 있는 미래 산업이며, 우리 청년들이 유럽의 탄소중립을 이끄는 K-원전을 이야기하는 미래를 만들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K-원전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선도하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다.